깐부치킨 '치맥 회동' 이후 품절 대란,
기업 총수의 친근함이 서사를 만든다
과거 기업 총수의 이미지는 권위와 성공으로 상징됐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오늘날 기업 환경에서는 친근함과 소통이 때로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기업 총수의 일상적 제스처 하나가 시장의 관심을 끌고, 소비자 행동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이들은 직접 개인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그들이 착용한 패션 아이템의 정보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며 품절 사태를 빚기도 한다.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함께한 ‘치맥(치킨+맥주) 회동’은 그 상징적 사례였다. 세 인물의 만남 장소는 다름아닌 ‘깐부치킨’이었다. 다음날 배달 플랫폼에서는 깐부치킨의 주요 메뉴가 연이어 품절됐다. 친근한 기업 총수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파급력을 증명했다.
권위의 상징을 일상적으로 바꾸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삼성동의 깐부치킨 매장에 세계 기술 산업의 정점에 선 세 명의 인물이 모였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함께한 회동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의 막간을 장식한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장면이었다. 이들은 후라이드 치킨과 맥주를 즐기며, 모두 일어나 ‘러브샷’을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회동 장소가 고급 호텔이 아닌 동네 치킨집이라는 점, 또한 ‘깐부’라는 단어가 가진 상징성을 회동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확산시켰다. 깐부는 친한 단짝 친구나 짝꿍을 가리키는 은어로,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명대사 “우리는 깐부잖아”를 통해 글로벌로 확산된 단어다.
우리나라 경제를 좌우하는 기업의 총수들이 동네 치킨집에 모여 소탈하게 치맥을 즐기는 모습은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기업 총수가 일상 속 공간을 선택하면서 대중적 파급력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회동 장소가 특정 브랜드로 연결되며 소비자의 심리적 거리감은 단숨에 좁혀졌다.
AI 깐부 세트 출시, 사회공헌까지 이어진 총수의 파급력
회동 이후 깐부치킨은 막대한 수혜를 얻었다. 배달 플랫폼에서는 검색량이 급증하며 주요 메뉴가 줄줄이 품절됐고, 깐부치킨 1호점인 성복점은 몰려든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이틀간 임시 휴업하기도 했다. 세 사람이 직접 방문해 회동을 즐긴 테이블은 “좋은 기운을 받아가겠다”며 오픈 시간보다 더 전에 모인 손님들로 인해 1시간 이용 제한이 생기기도 했다. 단 한 번의 회동이, 몇 억 단위의 광고 캠페인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 파급력을 만든 셈이다.
깐부치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브랜드는 회동 당시 세 사람이 먹었던 메뉴를 그대로 재현한 ‘AI 깐부 세트’를 공식 출시했다. 세트는 바삭한 식스팩·크리스피 순살·치즈스틱으로 구성됐다. ‘AI’라는 이름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엔비디아 세 기업의 기술적 협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All In 깐부(모두 함께 깐부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깐부치킨은 AI 깐부 세트의 판매 수익 10%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이는 판매 촉진을 넘어, 브랜드의 윤리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장치가 됐다.
기업 총수의 친근한 행동이 한 기업의 매출로 이어지고, 나아가 또 다시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AI의 선택을 받은 음료,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이번 회동의 수혜자는 깐부치킨뿐만이 아니었다. 치맥 회동 당시 젠슨 황 CEO는 세 사람의 회동을 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에게 직접 빙그레 바나나맛우유와 김밥을 나눠줬다. 이는 언론과 SNS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의 CEO와 대한민국 국민 음료가 만난 순간이었다. 이로 인해 바나나맛우유는 ‘AI의 선택을 받은 음료’라는 새로운 서사로 소비자에게 인식됐다.
빙그레는 하루 만에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물 들어올 때 노 젓겠습니다. 바유(바나나맛우유) 100개 쏘겟슨, 황송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이벤트를 알렸다.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간단한 이모지와 함께 댓글을 다는 간단한 참여 방식으로 진행됐다. 빠른 대응과 간단한 참여 방법으로 즉시 소비자와 접점을 만든 것이다.
기업 총수의 친근함이 브랜드 자산이 되는 시대
기업 이미지가 형성되는 핵심은 제품이 아닌 행동의 서사다. 리더의 행동은 기업의 태도를 상징하고, 그 태도는 곧 브랜드의 이미지로 반영된다. 이번 사례는 총수의 친근한 행보가 기업 이미지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치맥 회동은 기업을 멀리 있는 권위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의 감각을 공유하는 ‘인간적인 주체’로 전환시켰다. 총수의 일상적 행동 하나가 기업과 소비자 간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상징으로 기능한 것이다. 또한 ‘깐부’가 지닌 협력과 동반의 의미는 세 사람이 이끄는 기업들의 기술 연대 이미지와 맞물렸고, 자연스럽게 개방적이고 유연한 경영 문화를 떠올리게 했다. 행동 하나가 기업의 가치와 철학을 설명하는 비언어적 메시지로 작용한 셈이다.
깐부치킨은 회동의 공간으로 선택되며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했고, 세 사람의 기업은 그 공간의 의미를 통해 ‘기술 중심의 대기업’에서 ‘사람 중심의 소통 기업’으로 전환됐다. 한 장면이 외부 브랜드의 매출을 움직이는 동시에, 내부 브랜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각 기업이 가진 ‘거대하고 기술 중심적인’ 인상을 완화시키며, 인간적이고 소통하는 조직으로 인식되게 했다. 이는 오늘날 리더십이 곧 기업의 얼굴이자, 가장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태도를 소비하는 시대, 리더십이 브랜드의 서사를 바꾼다
‘깐부치킨 회동’은 총수의 친근함이 기업의 언어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리더십이 성과와 권위를 중심으로 작동했다면, 오늘날의 리더십은 공감과 서사로 평가받는다. 기업이 기술과 자본으로는 차별화되기 어렵게 된 지금, 리더의 태도와 행동은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창이 된다. 결국 현대의 소비자는 제품이 아니라 태도를 소비한다. 깐부치킨이 대중의 호감을 얻은 것은 맛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담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엔비디아·삼성전자·현대차가 얻은 긍정적 평판 역시 기술력보다 리더의 태도에서 비롯됐다. 총수의 친근함은 브랜드의 인간적 얼굴을 만들어내고, 그 얼굴이 기업의 신뢰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태도가 브랜드의 서사를 바꾸고, 그 서사가 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