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579돌 맞은 브랜드들의 한글날 마케팅
한글, 문화적·예술적·기술적 경험의 매개체로 재해석
10월 9일, 한글날이 579돌을 맞았다. 매년 10월이 되면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글날을 기념한다. 과거에는 브랜드가 한글날을 기념하는 방식이 국문 사용 장려 등에 그쳤다면, 이제는 글자를 브랜드의 언어로 재해석 하고, 언어의 구조를 기술과 예술, 감성의 매개체로 확장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의 브랜드는 언어를 통해 국가적 이미지를 넘어 문화적 감도를 드러내고, 소비자와의 깊은 정서적 접점을 만들어낸다. 한글은 그 자체로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언어 체계이자, 미적으로 완결된 디자인이기에 브랜드에게는 철학과 감각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수단인 것이다. 특히 올해 한글날에는 대기업부터 글로벌 아티스트, 식품 브랜드, 플랫폼 서비스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다.
삼성전자 '한글 트럭', 기술로 쓴 언어의 미래
삼성전자는 한글날을 기념해 뉴욕한국문화원,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와 협업해 ‘한글 트럭’ 프로젝트를 펼쳤다. 이는 예일대, 코넬대, 프린스턴대 등 미국 내 6개 명문대를 순회하는 이동형 전시 형태로, 한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세계 청년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강익중 작가가 고안한 ‘한글 큐브’ 디자인을 트럭 전면에 설치해, 트럭 자체가 하나의 대형 예술 작품이 됐다. 현장에서는 관람객이 갤럭시Z 폴드7을 통해 영어로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작성하면 갤럭시 AI 번역 기능이 해당 문장을 실시간으로 한글로 변환돼 트럭 외벽의 대형 스크린에 송출됐다. 또한 갤럭시Z 플립7을 활용한 포토존을 마련해 K-컬처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대학생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뿐만 아니라 한글과 기술을 통해 자신만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한글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 한글을 매개로 한국의 기술과 감성을 수출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제품의 기능을 홍보하기 보다, 언어를 기술로 확장한 시도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혁신’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철학이 새로운 기계나 발명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이 더 깊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적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 한글을 기술의 인터페이스로써 다룬 점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메시지다. 삼성은 영어 중심의 기술 세계 속에서 자국 언어의 구조와 미학을 기술 시스템에 녹여내 문화적 자부심을 구현했다. 브랜드가 기술의 최전선에서 언어의 따뜻함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문화적 힘이다.
제니의 '젠 세리프' 서체, 디지털 경험으로 세계를 잇다
글로벌 아티스트 블랙핑크 제니가 속한 OA엔터테인먼트는 한글날을 맞아 전 세계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신규 한글 글꼴 ‘젠 세리프’를 공식적으로 출시하고 무료 배포했다. 한글과 서양의 블랙레터 전통 서체를 결합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장식을 최소화하고 본질을 살리는 동시에 유연한 곡선을 넣어 딱딱한 서체 인상을 줄였다. 해당 서체는 메타(Meta)와 협업해 인스타그램 숏폼 영상 편집 앱 ‘에디트(Edits)’에 등록됐다. 이는 한글 서체로는 최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앱 사용자들은 젠 세리프 서체를 영상 텍스트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블랙핑크 제니는 앞서 2025 서울관광 명예 홍보대사로 선정된 바 있으며, 〈ZEN〉, 〈서울 시티〉와 같은 음악으로 세계에 한국의 멋을 알렸다.
서체를 무료로 배포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이 서체는 접근성에 핵심을 둔다. 사용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해당 폰트를 사용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한글이 스타일과 정체성을 구현하는 시각적 매개체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서체에 블랙핑크 제니와 OA엔터테인먼트의 정체성을 녹여내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냄으로써, 제니 개인의 브랜딩을 더욱 다층화시키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 숏폼 영상 편집 앱 ‘에디트(Edits)’ 내에서 즉시 사용 가능하도록 설계함으로써 사용자 경험의 동선을 설계했다. 서체를 다운로드하고 적용하는 번거로움 없이, 곧바로 콘텐츠 제작 환경에서 적용 가능하다.
‘젠 세리프’ 서체는 한글을 창작의 도구로 전환시키는 시도다. 보존의 대상으로서 한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한글을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하고 팬덤, 디지털 플랫폼과 함께 확장해가는 방식은 한글을 경험적·참여형 콘텐츠로 재정의할 수 있다는 전략적 교휸을 제공한다.
과자에 새겨진 우리 역사, 오리온의 한글 스낵
식품 기업 오리온은 국립한국박물관과 함께 한글날 한정판 스낵을 출시했다. 소비자들에게 오랜 기간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고래밥과 초코송이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협업은 스낵 패키지에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조선 왕실 기록물 속 옛 한글 서체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고래밥의 패키지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언해본이 실려있는 『월인석보』의 판본체를 차용한 서체를, 초코송이의 패키지에는 조선시대 덕온공주가 필사했던 『자경전기』의 부드러운 친필 서체를 담았다. 한글 창제 초기부터, 조선 후기의 친필 서예까지 이어지는 옛 한글을 소비자의 일상에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이번 협업은 한글을 문화적 리터러시의 영역에서 소비자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시도다. 오리온은 조선 왕실 기록물 속 판본체와 친필 서체를 적용해 한글의 역사적 뿌리와 미적 가치를 직접 일상 속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소비자는 스낵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한글의 역사적 깊이와 미감을 경험하게 되는 구조다.
오리온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먹거리와 문화의 정체성을 결합함으로써, 한글을 글로벌 소비 경험의 매개체로 활용했다. 즉, 한글을 소비 경험과 문화적 스토리텔링을 연결하는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소비 경험 자체가 한글과 한국 문화의 가치를 체험하게 만들도록 한 설계가 핵심이다. 한글을 ‘맛’과 결합한 오리온의 시도는 브랜드가 문자 문화와 소비재를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한다.
유튜브 최초, 언어 기념 유들이 된 '한글'
▲ 한글날을 맞아 스페셜 '유들(Youdle)'을 공개한 유튜브 / 영상 = 유튜브 코리아
유튜브는 특정 기념일이나 이벤트마다 특별한 로고인 ‘유들(Yoodle)’을 선보이며 전 세계 시청자들과 함께 기념일의 의미를 나눠왔다. 올해 한글날에는 ‘2025 한글 유들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로고인 ‘YouTube’에서 ‘유튜브’로 바꾸며 한글의 기원과 시대를 초월한 창조 정신을 되새겼다. 유튜브가 특정 언어를 기념하기 위해 유들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로고는 훈민정음 해례본 판본체를 기본으로 삼고 붓글씨의 감성을 더해 디자인 됐다. 특히 ‘유’와 ‘튜’의 모음은 전통적으로 점과 선만으로 이뤄지기에, 작은 모바일 화면에서도 읽기 쉽도록 접점을 연결해 구조를 최적화했다.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던 것처럼, 오늘날 유튜브가 한국 창작자들이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 사용자에게는 자신의 언어와 문화가 세계적 플랫폼에서 인정받고 기념되는 자긍심을 제공해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하게 만들고, 외국인 사용자에게는 한글과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며 문화적 친밀감과 흥미를 형성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플랫폼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전 세계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한글, 체험과 창의성의 통로가 되다
한글날 마케팅에서 브랜드가 지향해야 할 핵심은 한글을 문자나 홍보 수단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예술적·기술적 경험의 매개체로 재해석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관람자를 넘어 참여와 창작의 주체로 변모하며, 브랜드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체험 속에 스며든다. 또한 한글의 역사적 깊이와 미적 가치를 일상 속에 녹여내면서 브랜드는 한국 문화와 저체성을 존중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글을 살아 있는 매개체로 바라보고, 참여와 체험, 문화적 자산화, 글로벌 창의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브랜드를 매개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체감하고, 브랜드는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강화하며 장기적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다. 한글은 과거의 혁신과 오늘의 경험을 연결하고, 내일의 상상과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