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NGO 마케팅
창의적 접점을 활용해 마음을 움직이다
오늘날 마케팅은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업이 마케팅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듯,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기구)도 사회 문제 해결과 후원자 확보를 위해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다만 NGO 마케팅은 브랜드를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공감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1948년 설립된 이래로 아동 권리와 복지 증진에 앞장서며 캠페인형 마케팅을 통해 공공의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초록우산이 진행한 일련의 캠페인들은 NGO 마케팅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초록우산이 펼친 네 가지 캠페인을 통해, NGO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몰라서 아픈 아이들이 없도록,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동의 예방접종 완료율은 96.4%에 달하지만, 이주배경 아동은 절반 수준인 55.2%에 그친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동은 12세까지 필수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음에도 불과하고, 이주배경 아동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 때문이다. 의료 제도가 아무리 잘 설계돼 있어도, 정보가 닿지 않으면 혜택은 공허한 제도에 불과하다.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 캠페인은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초록우산은 ‘이주가정이 가장 자주 가는 곳’인 국제 식료품 로컬 마트에 주목했다. 이곳은 각 나라의 식재료, 향신료뿐만 아니라 육아용품을 판매하기에 이주배경가정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분유와 기저귀를 사러 온 부모에게 물건을 구입하는 순간에 맞춰 특별한 영수증을 발급한다. 해당 영수증에는 예방접종 정보를 5개국 언어로 안내하고, QR코드를 스캔하면 초록우산의 상담 지원 페이지로 연결된다. 글로벌 POS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 회사인 ‘자바포스’와의 협력을 통해 육아용품 구매 시 자동 출력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디테일이 돋보인다.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의 생활 동선을 잘 파고든 사례다. 마케팅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가장 일상적인 순간이다. 물건을 구매하면 자동으로 발급되는 영수증이 의료 사각지대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캠페인은 NGO 마케팅의 본질을 정확히 짚었다.
◈ 학업을 희생하는 가족돌봄아동의 '네 시간의 스터디윗미'
가족돌봄아동은 보호자의 신체 및 정신적 장애, 질병 등으로 보호자를 대신해 가족을 돌보는 아이들을 말한다.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가족을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이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속 가족돌봄아동에게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시청자와 함께 공부하는 콘텐츠인 ‘스터디윗미(Study with me)’ 포맷을 활용했다.
하지만 초록우산의 ‘스터디윗미’ 영상에서는 공부하는 학생이 등장하지 않는다. 가족돌봄아동이 하루 평균 4시간을 돌봄에 쓰며, 학업과 자기 성장을 희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영상의 길이를 4시간으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학생 유튜버 ‘마이린TV’와 협업해, 실제로 4시간 동안 비어 있는 책상만을 송출했다. 이는 6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온라인에서 가족돌봄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촉발했다.
NGO가 가진 메시지는 때로는 무겁고 멀게 느껴지지만, 익숙한 포맷을 비트는 순간 메시지는 강력한 주목을 받는다. 함께 공부하는 콘텐츠에서 비어 있는 화면이라는 역설적인 장치가 그 효과를 입증했다.
◈ 가족이 아닌 자신까지 돌볼 수 있도록, '돌봄 약봉투'
‘네 시간의 스터디윗미’가 가족돌봄아동 문제를 사회 문제로 인식시키는 데에 주력했다면, ‘돌봄 약봉투’는 가족돌봄아동에게 지원 정책을 알리고 이들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기획됐다. 가족돌봄아동을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신청 방법을 몰라 사각지대에 놓이곤 한다.
평균 돌봄기간인 약 4년 동안, 가족돌봄아동이 쥐게 될 약봉투의 갯수는 4,380개에 달한다. 초록우산은 이 점에 주목해, 약국을 메시지 전달 창구로 삼았다. 가족돌봄아동은 보호자와 병원을 함께 다니며 약국을 방문할 확률이 높고, 그 과정에서 약봉투를 반드시 손에 쥐기 때문이다.
초록우산은 대한약사회와 함께 약봉투를 광고 지면으로 활용했다. 약 봉지의 아침, 점심, 저녁 시간 복약 표시 대신 하루종일 가족을 돌보는 데 맞춰져 있는 아이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또 약봉투에 QR를 삽입해 실질적 지원 제도로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거액을 들여 광고를 하더라도, 직접 타깃에게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초록우산은 당사자가 실제로 마주하는 지점을 광고 매체로 전환해 메시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돌봄 약봉투는 2024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대상을 포함해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NGO 마케팅이 제도와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 '해피니스 링'을 통한 나에게도 남는 후원
많은 NGO 단체는 지속 가능한 후원자 확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초록우산은 55만명의 후원자와 함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단체의 장기적 안정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후원자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후원을 장려하는 호소적 메시지는 금세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초록우산은 후원을 새로운 경험으로 재해석했다.
주얼리 브랜드 ‘제이에스티나’와 협업해 제작된 ‘해피니스 링’은 제이에스티나의 사회 공헌 활동인 ‘Think Pink’의 일환으로, 어린이들의 핑크빛 미래를 위한 바람을 담았다. 이는 해외 아동을 돕기 위한 정기 후원을 시작하는 후원자에게 굿즈로 증정되는 캠페인이다. 이는 후원자가 아이의 행복을 위해 보탠 마음을 손에 끼울 수 있는 기부의 물리적 증거다.
이 캠페인의 의미는 기부가 보상 없는 행위라는 기존 인식을 전복했다는 데 있다. 해피니스 링은 후원자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증명하는 심리적 만족을 제공했고, 이는 ESG 활동에 큰 관심을 두는 소비자들의 가치와 맞닿는다. 기업이 고객에게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듯, NGO도 후원자에게 경험을 준다. 이 경험은 곧 후원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요소가 된다.
◈ 사회를 바꾸는 방법, 공감과 행동 설계
초록우산의 앞선 캠페인들은 NGO 마케팅의 가능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은 생활 동선 속 접점을 활용했고, ‘네 시간의 스터디윗미’는 대중문화의 문법을 창의적으로 전용했다. ‘돌봄 약봉투’는 일상적 물품을 매체로 활용했으며 ‘해피니스 링’은 후원을 독려하는 새로운 요소가 됐다.
위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NGO 마케팅은 공감과 행동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회 문제를 알리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문제를 체감하고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전략이다. 초록우산의 시도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세상의 가능성을 넓히고,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미래를 손끝으로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