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대가 사랑한 아날로그 감성, 브랜드는 어떻게 그리움을 상품화했나
90년대와 2000년대의 미학인 Y2K 감성이 유행하면서 그 시절의 아날로그 감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버킷 모자와 로우라이즈 청바지 등 패션의 유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카세트테이프, CD 플레이어 등 아날로그 기기들의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디지털 노스텔지어(Digital Nostalgia)' 현상이라고 부른다.
지난 5월, 가수 아이유는 리메이크 3집 꽃갈피 셋을 발매하며 CD플레이어와 유선 이어폰을 굿즈로 출시했다. 네모의 꿈, Never Ending Story 등 과거의 노래를 리메이크함과 더불어 그 시절의 음악 청취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굿즈를 제작함으로써 스트리밍이 일상이 된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에게 특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실제 구매자들 사이에서도 "집에 CD 카세트가 없어서 CD는 늘 장식용이었는데, 이제 직접 들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와 같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아날로그 기기를 통해 감정을 환기하는 이러한 시도는 브랜드나 아티스트와의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걸 그룹 아일릿(ILLIT) 또한 지난 6월 16일 미니 3집 bomb를 발매하며 유선 인이어 이어폰을 굿즈로 출시해 주목을 받았다. 에어팟, 버즈 등 무선 이어폰이 보편화된 현재, 유선 이어폰은 '낡은 것', '오래된 것'이 아닌 '힙한 감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디지털 노스텔지어 현상은 레트로 열풍으로 Y2K가 인기를 끌며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팬들은 해당 굿즈를 통해 그 시절 감성의 재연과 더불어 아티스트를 향한 마음도 충족시킬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연예인 굿즈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인 콘텐츠 소비문화에서도 관찰되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Z플립 시리즈는 폴더폰을 사용하던 200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용자들은 갤럭시 Z플립 시리즈에서 활용할 수 있는 폴더폰 이미지의 배경 화면을 직접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또한 '싸이월드 감성'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그 시절을 재현한 블로그 꾸미기, BGM(배경음악) 꾸미기 등이 한동안 큰 유행을 끌기도 했다. 디지털 노스텔지어 현상이 증가하며 영상 분야에서도 캠코더 촬영 시 나타나는 VHS 효과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걸 그룹 뉴진스(NewJeans)의 선공개 싱글 'Ditto'의 뮤직비디오가 VHS 효과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 같은 트렌드는 일종의 '복고 마케팅(Retrospective Marketing)'으로도 해석된다. 기능보다는 정서적 연결을 중시하는 경험 소비가 일상이 된 지금, 사람들은 단순한 제품이 아닌 과거의 감정과 추억을 담은 상품에 더 큰 애착을 보인다. 특히 Z세대에게 CD플레이어같은 아날로그 기기는 낯설지만 동시에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디지털 노스텔지어는 단순한 복고를 넘어 과거의 매체와 기술을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소비문화이다. 이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소비자와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창의적인 접점이자 브랜드 서사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 되고 있다. 아날로그의 향수를 디지털 방식으로 소환하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를 동경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에서 위로를 찾는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디지털 노스텔지어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과거를 재해석하며 소비자와의 감정적 접점을 만들어가는 마케팅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콘텐츠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는 과거에 직접적인 경험이 없더라도 그 시절의 감성과 이미지를 능동적으로 소비하고 공유하는 데 익숙하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소비되고 재구성되는 현재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