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Change)’는 양면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기회(Chance)의 얼굴과 위기(Crisis)의 얼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도 변화는 난이도 높은 과제에 속한다. 이는 좀처럼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징조를 캐치하고, 흐름을 읽어서,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을 때나 대응이 가능하다. 변화에 대응하기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 때문이다. 필름 카메라의 대명사였던 코닥(Kodak)이 파산에 이르게 된 이유도 디지털이라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순간이다. 기업가들은 항상 고민한다. 언제가 나아갈 때이고, 언제가 현상을 유지하며 지켜봐야 할 때인지를. 용기있는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되면 기존의 업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고정관념을 깨는 의사결정을 하기란 너무 어렵다. 누가 이 리스크를 감당하려 하겠는가?

 

우리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1인자를 따라하는 2인자들을 무수히 보아 왔다. 승자독식의 플랫폼의 세계에서 2인자는 영원히 2인자일 뿐이다. 이 세계에서는 새로운 시장의 틈새를 발견해서 그 안에서 1인자가 되는 기업이 승기를 잡는다. 여기에 자신의 목소리로 지독하게 자리를 고수해 나가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컬리(Kurly)이다. 지금은 ‘마켓’을 떼고 ‘컬리’라는 이름으로 인생 2막을 열고 있지만,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순탄하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컬리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사진=컬리 제공]
[사진=컬리 제공]

이커머스계의 샛별, 마켓컬리의 등장

몇 년 전만해도 컬리는 이커머스계의 샛별이었다. 쿠팡, 네이버쇼핑, 11번가, SSG닷컴 같은 이커머스 공룡들 사이에서 마켓컬리의 시작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전지현을 전면에 내세운 보랏빛깔 이미지 광고를 필두로, 프리미엄 식재료에 관심 많은 젊은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트렌드의 중심에 올라섰다. 마켓컬리의 성공 법칙을 A to Z까지 알려준다는 책까지 나올 정도로 가장 주목받던 이머커스였던 컬리. 하지만 이커머스계에 던져진 컬리의 현실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냉혹했다. 괄목할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컬리는 지속된 누적 적자를 극복하고 올해 안에 영업이익을 내야 하는 무거운 부담감을 안고 힘겹게 달리는 중이다.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커머스 생태계

 

비단 컬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구매의 접점이 이커머스 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것의 연결이 가능한 디지털 세상에서 구매버튼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바로 커머스가 된다. 이로 인해 이커머스 기업들은 무한 경쟁의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낮은 마진율과 높은 물류 비용, 잦은 고객 이탈로 고전을 면하기 힘든 온라인 유통가의 이야기다. 수년간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올해 처음 흑자 전환을 이루어 냈던 쿠팡을 제외하고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출혈 경쟁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이커머스의 돌파구, ‘배송’에서 찾은 고객 가치

 

초기 온라인 쇼핑이 고객의 신뢰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제대로 결제가 될지, 물건이 배송되다 분실되지 않을지 등 온라인으로 물건을 산다는 것 자체에 불신이 있었다. 그러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온라인 유통의 입지가 커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의 장점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없는 게 없는 전 지구적 쇼핑몰이 되었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업자들까지 상품을 납품하면서 대안은 더욱 많아졌다. 온라인 쇼핑의 최대 장점이 검색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상품이다. 상품의 종류 뿐만 아니라 품질도 상향 평준화가 되면서 굳이 대기업 상품이 아니어도 믿고 살 수 있으며, 사용 후기나 소비자 리뷰를 통해 제품을 선택하는 안목도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이제 온라인 쇼핑몰은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 되었다.

 

안전→ 가격→ 품질 경쟁을 넘어, 지금의 이커머스가 처한 경쟁의 실체는 속도전이다. 국내 이커머스 대표주자인 쿠팡이 로켓배송을 내세우자, 이후로 새벽배송, 당일배송, 총알배송 등 다양한 배송 전쟁의 막이 올랐다. 유통업계가 내세우는 속도전은 빠른 배송이다. 이는 구매 시점과 수령 시점을 단축하는 것을 뜻한다. 배송 전쟁을 앞세운 이커머스들의 고객 가치는 ‘빠른 전달(Fast Delivery)’이다.

 

 

컬리의 ‘새벽 배송’에 숨은 의미

 

언뜻 컬리도 속도전에 가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속도전은 조금 결이 다르다. 이들은 신선 식품 전문가이다. 컬리의 신선 식품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술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들은 시즌, 요일, 날씨, 할인, 지역, 트렌드 등 60개 이상의 변수를 고려해서 판매량을 예측한다. 판매가 안되면 모두 폐기해야 하는 신선 식품인 만큼, 재고를 줄이기 위한 이들의 예측 고도화는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보인다.

 

이들의 속도전은 ‘구매’에서 ‘수령’까지가 아니다. 물건 ‘사입’에서 ‘구매’까지의 기간이다. 신선 물류 유통 프로세스를 시간의 정확성으로 관리하는 비즈니스인 만큼, 컬리는 기타 유통과는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은 예측 발주, 선 판매, 계약 재배로 이어진다. 컬리가 데이터 기술에 자본과 역량을 투자하는 것도 신선한 식품을 식탁에 올리고자 하는 사명을 붙들고 치열한 커머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집하는 몸부림이다. 이들이 어려운 유통에서 그나마 지금의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는 원천이다.

 

마케팅의 목적이 고객가치 창출이라면, 이들의 핵심은 ‘빠른 배송’이 아닌 ‘신선 배송(Fresh Delivery)’이다. 신선하게 식탁에 올리려다 보니 빠른 배송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이들의 핵심 가치(Core Value)는 신선(Fresh)으로 보인다. 정말 그러한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

 

 

우리가 컬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컬리의 처음 출발과 지금의 행보를 보이게 하는 DNA는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김슬아 대표의 ‘집요함’이다. 신선하고 품질 좋은 식품을 식탁에 올리고자 하는 장인의 정신과도 같은 그녀의 디테일이 지금의 컬리를 만들었다.

 

컬리의 기준에 부합한 최상의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이들은 매주 ‘상품 위원회’를 열어 상품 품질을 평가하고 검증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100% 상품 직매입을 도입하여, 데이터 기술을 바탕으로 당일 입고해서 당일 출고하는 초신선(Super-Fresh) 상품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그들의 집요함은 희소가치 상품관에도 드러난다. 품종의 보존을 위해 소비 감수성이 높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희소가치의 상품을 제공한다. 포장도 남다르다. 사과 한 상자를 담더라도 다양한 종자의 사과들로 한 박스를 구성한다. 그저 보기 좋고 고급스러운 포장이 아니라, 식품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고객의 디테일한 입맛을 고려한 포장이다. 이들은 ‘유통 전문가’가 아닐 뿐더러 ‘상품 전문가’도 아니다. 정확히 이들은 ‘상품 품질 전문가’라고 불려야 마땅할 듯 싶다.

 

컬리의 상품성 기준(좌측), 상품 위원회(우측상단), 컬리의 포장(우측하단) [사진=컬리 제공]
컬리의 상품성 기준(좌측), 상품 위원회(우측상단), 컬리의 포장(우측하단) [사진=컬리 제공]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고집하는 품질이 ‘상품의 퀄리티(Quality)’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인 눈으로는 잘 지각되지 않았던 상품의 품질, 정확히는 ‘상품 품종(Diversity)’이라는 품질의 척도이다. 그 동안 맛보지 못했던 품질의 다양성이다. 이는 곧 다양한 고객들의 디테일한 취향(Taste)을 의미한다. 컬리가 왜 신선 식품의 품질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컬리가 뷰티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식품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외도로 보기보다, 품질 전문가로서 식품에서 뷰티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적 행보로 보아야 한다. 마켓컬리가 사명에서 ‘마켓’을 떼고 ‘컬리’로만 존재하겠다고 하는 이유도 그들의 비즈니스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겠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아직은 그 존재감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컬리는 명확히 왜 컬리에서 구입을 해야 하는지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컬리가 여는 버티컬 플랫폼이 기대되는 이유

 

컬리가 ‘마켓’을 떼겠다는 이유는 변화의 길목에서 혁신으로 나아가겠다는 용기 있는 의사결정이다. 물론 비용 절감으로 적자 구조를 개선하고 빠른 시간 안에 흑자 전환을 꾀해야 하겠지만, 여전히 필자의 눈에는 컬리가 ‘이커머스’라는 카테고리 전형성의 틀을 벗고, 자신들의 법칙대로 혁신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파는 것이 ‘스마트폰’이 아니듯, 애플의 코어 아이덴티티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혁신(Innovation)’이다. 당근(Daangn)도 초기에는 ‘중고거래’ 플랫폼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들의 지향은 중고거래가 아닌 ‘지역 기반 커뮤니티’임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컬리도 이들의 자취를 따르고 있는지 모른다. 컬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제품을 바라보는 취향의 안목’이다. 컬리가 ‘내일의 장보기’라는 슬로건에서 ‘Better Life for All’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컬리는 단순한 이커머스가 아니다. 마치 버티컬 플랫폼과 같다. 버티컬 플랫폼이 지향하는 바는 전문성이다. 무엇을 전문할 것인가? 고가의 상품, 어디서 보기 어려운 상품이면 되는가? 그것도 좋다. 하지만 상품을 규정하는 나름의 기준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컬리처럼 말이다.

 

마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가 붙어있는 컴퓨터처럼, 이제 ‘컬리’가 붙어있는 상품에는 그들의 집요한 품질에 대한 안목을 지지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날이 올 것이다. 빠른 트렌드 변화로 인해 그럴싸한 브랜드를 갖추기 어려운 브랜드 약소국에서 컬리 같은 브랜드가 버티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컬리가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도 여전히 컬리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 본 기고문은 한국마케팅협회 디지털마케팅 CEO과정 22기 교육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의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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