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한 세상 속에서 균형적인 삶을 찾다

 한국은 일 중독 사회다. 2016년 OECD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나마도 멕시코가 1위를 해서 2위인 것이지, 관련 통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1980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27년간 한국이 1위였었고 한국이 1위를 기록한 가장 최근의 해는 2014년이다. 과로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월 28일, 국회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 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2018년 7월 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이런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떠오르는 트렌드가 있다. ‘Work-Life-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 새로운 세대의 생활 양식인 이 워라밸은 사실 우리나라에선 2016년 때부터, 영국에서는 1970년대 말에 처음 등장한 만큼 오랜 개념이다. 갓 생긴 신조어라기보다는,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18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이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을 워라밸 세대라고 명명한다. 워라밸 세대는 대한민국 소비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생 이후부터, 이제 갓 사회로 진입한 1994년생까지의 정도의 세대를 직장생활의 관점에서 규정하는 명칭이다.

어쩌면 온몸 바쳐 직장에 일해 왔던 50대에게는 낯선 광경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흐름은 바뀌고 있고, 이에 적응하려는 움직임도 치열하다. BC 빅데이터 연구·개발팀에 따르면, 30대 직장인은 43%가 칼퇴족이지만 50대에서는 그 비율이 26%로 낮았다. 김진철 BC카드 마케팅부문장은 "회사 업무 전반에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다양한 인사이트를 제공 중이며 사회적 이슈 분석 등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로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이 편리한 환경에서 BC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시장 분석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이 새로운 세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워라밸 세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트렌드 코리아 2018의 분석을 토대로, 워라밸을 조망한다.

일과 자신의 균형

 혹시 이건 90년대 이야기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을 위해 말하자면, 이 기사 자체는 무려 2008년에 발행되었으며, 이 기사에 감동한 사람들이 웹주소도 박제해놓았으나, 어찌 된 일인지 그 웹주소는 현재 접근할 수 없다고 나온다. 어쨌든 합성은 아니다. 그럼 10년이 지난 요즘 20대들의 생각은 어떨까.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올해 4월 6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간 자사 회원 764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퇴사경험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20대에서 72.4%를 차지했다. 20대 직장인들은 ‘업무 로드 및 업무구조’를 퇴사 이유로 뽑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특히 20대가 퇴사 사유 항목 중 오랜 조직 생활로 잃어버린 나의 생활을 되찾고 싶을 때’라는 답변 항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답변을 선택한 20대 직장인의 비율은 13.5%로, 이는 30대 직장인의 11.2%, 40대 직장인의 10.1%, 50대 직장인의 5.6%, 60대 직장인의 8.8%가 선택한 것과 대비했을 때도 높은 수치다. 더는 직장에 나를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일과 나 사이의 균형을 찾고 싶다는 20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한다. 야근을 스포츠로 여겼던 10년 전 기사와는 달라진 양상이다. 

직장 일과 나 사이의 평형을 맞추고자 하는 워라밸 세대에게 회사 스트레스는 벗어나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이 세대에겐 점심시간은 말 그대로 황금 같은 휴식시간이다. 1시간 남짓 짧은 점심시간 안에 즉각적인 휴식을 즐기려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패스트 힐링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패스트 힐링은 (Fast healing) 간편하게 먹는 패스트푸드처럼 자투리 시간에 취하는 휴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카페나 영화관에서 피로를 푸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개념을 이용한 대표적 사업은 바로 수면 카페다. 수면 카페는 직장인들이 근무 중 자투리 시간과 점심시간을 활용해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다. 신한카드 트렌드 연구소가 전국 주요 수면 카페 67곳을 대상으로 2015년 하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조사한 결과 분기별 카드 결제액의 평균 성장률은 135%에 달했다. 수면 카페 업계 1위인 미스터 힐링의 경우, 2015년 홍대 1호점으로 시작하여 2년 만에 107호점을 열었다. 워라밸 세대는 자신에 대한 희생은 최소화하고, 힘든 하루를 견뎌낸 자신을 달랠만한 것을 찾는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fast healing’ 이니만큼 ‘간편’하고 ‘빠르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나 제품이면 충분하다.대유위니아가 선보인 휴대용 자연 가습 청정기 ‘위니아 스포워셔’는 텀블러 형태의 디자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깨끗하고 촉촉한 공기를 만들어 쾌적한 휴식 공간을 만든다. LG전자가 선보인 ‘LG 시네빔 레이저 4K’는 집이나 사무실의 작은 휴식 공간에서도 영화관 못지않은 또렷한 화면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이다. 두 제품 모두 간편하고 빠르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든 제품들이다. 워라밸 세대를 겨냥할 서비스를 만들 때 좋은 참조가 될 듯하다.

대유위니아 스포워셔/제공=대유위니아
LG전자 LG 시네빔 레이저 4K/제공

일과 여가의 균형

국내 중견기업에서 대리로 근무하는 A 씨는 최근 댄스 학원에 등록하고 퇴근 후 아이돌 걸그룹 댄스 연습을 한다. 한 대학병원의 응급실 간호사는 아마추어 리그를 거쳐 프로 입식 격투기 대회에서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다. 이들 모두 자신의 본업을 마친 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직장과 무관한 취미를 가진, 워라밸 세대의 대표들이다.

워라밸 세대에게는 취미 역시 자신의 스케줄상에서 본업만큼이나 비중을 차지하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정시 퇴근과 저녁은 필수적으로 사수해야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독서, 운동 등에만 국한된 취미보다는, ‘나를 위한, 나를 의한’ 여가 생활에 더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그 형태도 캘리그래피, 주식투자, 웹툰 제작 등 매우 다채롭다.

그림, 피아노 등을 이제는 자발적으로 배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에 맞춰 예체능 학원들도 성인층을 겨냥한 맞춤형 수업을 내놓느라 바쁘다. 일대일 개인 수업에서 1일 수업 과정 등 젊은 직장인의 발길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클래스를 개설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성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예능, 즉 미술, 음악, 무용 등의 학원 수강자는 2013년 4만 2,462명에서 2016년 19만 3,258명으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이들은 SNS에 능통한 세대답게 각각의 취미활동을 재능공유 플랫폼에서 나누며 함께 즐기기도 한다. 디자인, IT&프로그래밍, 번역 및 통역 등 공유되는 재능도 다양하다. 특히 2011년 설립된 크몽은 국내의 재능공유플랫폼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한다. 사업 초기에는 아르바이트 개념이나 부업 거래가 주로 이루어졌으나 점차 플랫폼이 확장하면서 아마추어 개념에서 벗어나 ‘B2B 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8월에는 ‘레슨’ 카테고리를 추가해 C2C(Consumer to Consumer) 서비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 말, 크몽의 서비스 하루 거래량은 1억 원을 넘어섰다.

크몽 홈페이지.

아예 C2C 거래로 문을 연 재능공유 업체도 ‘탈잉’도 있다. ‘잉여탈출’의 줄임말로 잉여 시간에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술자리 분위기 띄우는 법, SNS 인생샷 찍는 법과 같은 비전문적인 수업부터 현직 메이크업아티스트와 헬스 트레이너, 프로그래머 등의 전문적인 강의까지 제공한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배울 수 있고 재능을 파는 사람 역시 적절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 올해까지 5만 명이나 탈잉 앱을 내려받았다. 또한 한화투자증권과 올해 3월 26일 업무 제휴 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탈잉 홈페이지

 심지어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취미를 어떻게 즐겨야 할지 모르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하비인더박스는 간단한 설문조사를 통해 고객의 적성을 파악한 다음, 그 특성에 맞춰 낙서, 압화드로잉, 3D 드로잉,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구성해 즐길 수 있는 패키지를 전송해주는 서비스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욕구는, 재능공유 플랫폼이라는 또 다른 시장도 열었다. 실제로 재능 공유 플랫폼 시장 자체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세계 재능공유 시장 규모가 2025년이면 44조 원에 달하고 국내 시장은 최대 4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기업들의 마케팅도 치열하다. 신한카드는 20·30세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다양한 취미를 배울 수 있는 ‘신한카드 워라밸 클래스’를 진행한다고 7월 4일 밝혔다. 신한카드 워라밸 클래스는 체험에 중점을 둔 하루짜리 수업으로 시간 부담이 적고 수업 주제별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해 함께 즐기면서 배운다는 장점이 있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동영상을 통한 온라인 클래스도 진행하며 신한카드 고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클래스는 계절별로 테마를 달리해 각 3회씩 진행된다. 7월 여름 클래스는 ‘도심 액티비티’를 주제로 롱보드(21일), 스케이트보드(28일), 크루저보드(8월 4일) 수업을 진행한다. 회차별 선발 인원은 30명씩이다. 10월 중으로 예정된 가을 클래스는 인기 웹툰 작가와 함께 하는 '여행 사진 스케치 클래스'를 진행한다.

일과 계발의 균형

온전히 나를 위한 삶, 자유인(自由人)을 꿈꾸는 워라밸 세대에겐 공부 역시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으로 하고자 한다. 심지어 취업 준비에 필수적인 토익 공부, PSAT 등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학원을 가기보다 여유롭게 독학이 가능한 책을 선택한다. 학원 및 인터넷 강의보다 가격도 싸고, 시간과 장소의 활용이 자유로우며, 개인에 따라 학습량 및 난이도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점을 잘 타고 베스트셀러가 된 독학 책들도 있다.

토익을 독학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조토익. 교보문고 일간 베스트 1위한 적도 있으며, 현재도 수십 건의 조조토익 후기가 올라가고 있다.
PSAT, LEET, NCS 등의 시험을 혼자서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책. 출간된 지 8개월만에 1억원 매출을 넘겼다.

혹은 단순한 지적 만족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학창시절에는 입시에 맞춰진 획일화된 공부만 했다면,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공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잡코리아가 남녀직장인 661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자기계발 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 중 ‘자기만족’이 2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워라밸 학습의 특징으로는, ‘퇴사를 위해 공부한다.’는 점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한국고용정보원의 2017년 월별 고용보험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직장인들 절반이 퇴사했다고 밝혔다. 워라밸 세대에게 직장은 경력을 만드는 수단에 불과해서 굳이 한 직장에 오랫동안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장이 자신에게 맞지 않을 경우, 언제든 퇴사할 준비를 한다. 실제로 이들을 지원하는 기관과 서비스들도 퇴사학교, 직장생활연구소 등 다양해졌다.

균형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워라밸이 최근 소비 트렌드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앞의 사례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기업의 ‘워라밸’ 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 SSG페이를 운영하는 신세계이앤씨는 하반기 시작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워라밸족 마케팅’을 진행한다고 9일 밝혔다. 간편결제 서비스 SSG페이를 운영하는 신세계(004170)아이앤씨는 하반기 시작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워라밸족 마케팅’을 진행한다고 9일 밝혔다. 특기할 만한 것은, 앞의 워라밸 세대가 중시하는 자신, 여가, 계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백화점 문화센터-쇼핑-영화관-물놀이장 프로모션을 펼치는 점이다.

기업들은 각 요소에 입각한 마케팅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세 가지를 다 지원해주는 마케팅 전략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 채용 담당자가 말한, “구직자가 워라밸 부분만 강조한다면 채용 시 재고의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부분이나,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은행 쪽도 주 52시간 초과해서 일하는 비율이 40% 된다는 통계와 ‘주말 근무가 없다’고 답한 외국계 기업 종사자는 44%로 가장 적게 나타났다는 결과를 보면, 심한 괴리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마 지금 당장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조직문화가 바로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일에 모든 것을 소비하는 인간형을 강요할 순 없다. 현 사회를 일군 기성세대와 워라밸 세대가 서로서로 이해하도록, 현실이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 새삼,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 떠오른다.

“세대 간 오해는 불가피한 것이고 해소 또한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해를) 줄이자면 기성세대가 먼저 자신을 책망하고 반성해야 한다. 아울러 젊은 세대들은 죽을 때까지 젊은이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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