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 브랜드 로고, 간단한 형태로도 누구나 그인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자체제작

검은 안경과 백발의 포니테일. 이 두 가지 특징만으로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칼 라거펠트이다. 그는 1983년 샤넬에 영입되어 시대적 변화에 뒤처지던 샤넬을 명실상부 최고급 명품 브랜드 자리에 올려놓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무대의상 디자이너,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브랜드 아이콘이다. 이처럼 그가 한 기업을 부흥시키고 개인이 하나의 브랜드로서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3년 샤넬에 영입된 그는 패션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진출처 : Fairchild Fashion Media

칼 라거펠트는 21세에 국제양모사무국 콘테스트 코트 부문에서 1등을 수상하면서 패션계에 입문하였다. 그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드로잉 실력을 바탕으로 발망(Balmain), 장 파투(Jean Patou)에서 견습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당시 지배적이었던 파리 쿠튀르 컬렉션을 담당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쿠튀르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여 자신만의 디자인을 슈퍼마켓 가맹점이나 개인 상점에 제공하면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 그는 기존의 주류인 쿠튀르에서 벗어나 끌로에(Chloe), 펜디(Fendi)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젊은 취향과 소통하였다. 그의 디자인은 패션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그는 단숨에 이 두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다.

기존의 주류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도전하는 그의 시도는 1980년대 그가 샤넬에서 활동하면서 정점에 다다른다. 그는 샤넬 로고를 딴 큰 액세서리, 과감하고 자유분방한 디자인을 연출하면서 전통복식이 아닌 캐쥬얼하게 바뀐 샤넬의 감성을 강조했다. 이는 젊은 세대들 또한 샤넬에 열광하게 했고, 샤넬을 소멸하는 전통이 아닌 재창조된 명품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2011년에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칼 라거펠트 전시 도록. 당시 전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직접촬영

무엇보다도 세계가 그를 하나의 브랜드 아이콘으로 보는 이유는 그의 디자인 실력 외에도 자신을 브랜드화 시킬 수 있는 사업가적 재치, 광범위한 지적 배경, 사진, 영화 등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명품 기업과 디자이너와의 협력이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했다. 이처럼 시대 변화와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신을 재창조하는 그의 모습은 기업가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에게 모범과 영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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