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좁혀져 오는 사회적 약자의 자리

서울 한복판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들어서면 직원들의 환영보다 나를 먼저 맞이하는 것은 거대한 키오스크이다. 키오스크(Kiosk)란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단말기로,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 고객이 직원을 대면하지 않고 주문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2010년대에 들어서 급속하게 치솟고 있는 인건비 상승과 고물가, 구인난 등은 물론 COVID-19 사태의 급격한 확산으로 사람 대 사람의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키오스크가 차지하는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늘 그렇듯, 키오스크의 빠른 성장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소외라는 이면이 숨겨져 있다.

카드플러스 키오스크 단말기 / 카드플러스 홈페이지
카드플러스 키오스크 단말기 / 카드플러스 홈페이지

키오스크는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 와있을까?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5월 실시한 키오스크 이용 실태조사와 디지털 약자층 접근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부터 60대까지 아우르는 설문 응답자 중 1주에 1회 이상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응답자 수가 5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요식업은 물론, 통행량이 많은 지역이나 번화가에 위치한 업장의 경우 더 이상 키오스크를 보기란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급격한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키오스크는 여러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내 ‘여론 속의 여론’에 따르면 점원을 통한 구매를 선호하는 사용자와 키오스크를 통한 구매를 선호하는 사용자의 비율이 거이 유사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디지털 친화 집단으로 여겨지는 18-29세의 70%가 키오스크를 ‘편리하다’고 응답한 반면, 50대 이상의 사용자 중 키오스크를 선호하는 집단은 단 40%에 불과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 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의 응답을 관찰하면, ‘화면을 읽기가 힘들다’, ‘화면 터치 형태의 조작이 힘들다’, ‘원하는 상품을 찾기 힘들다’는 답변이 주를 이룬다. 디지털 정보화 수치가 낮은 집단일수록 복잡하게 구성되어있는 키오스크 활용에 있어 물리적인 어려움을 느끼는 정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안내사 홍보 이미지 / 서울특별시청
디지털 안내사 홍보 이미지 / 서울특별시청

디지털 정보화란 디지털 접근 수준, 디지털 역량 수준, 디지털 활용 수준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디지털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스마트 기기 활용, 정보 검색, 알고리즘 응용 능력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의 보급과 일상 생활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디지털 소외 계층을 배제한 무조건적인 발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다.

키오스크로 인해 문제를 겪는 집단은 비단 중장년층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전국 15개 시도에 설치된 1,002개의 키오스크 단말기를 검토한 결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장치가 마련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단 한 대에 불과했다. 휠체어 사용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단말기가 설치되어있거나, 별도의 높이 조절 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 것은 물론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보조 설명 장치, 점자 유도 블록, 음성 안내 장치 등이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현장 / 하남시 평생교육관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현장 / 하남시 평생교육관

실제로 이와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지 및 정책 차원에서의 여러 노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남시를 비롯한 각 기자체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역량 강화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고, 일반 키오스크 단말기에 비해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금액 차이를 보이는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 단말기' 배포를 위한 보조금에 대한 정책 차원에서의 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실제로 지난 2021년, 키오스크 접근 편의성을 의무화하는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타 복지 법안과는 달리 '단계적 시행'을 허용하여 약 5년 간의 전례 없는 유예 기간을 암묵적으로 제공하면서 소외 계층에 대한 실질적 도움이 빠져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편리하게 한다. 지난 긴 세월 동안 새롭게 등장하고, 또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기술 덕분에 우리는 더욱 윤택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편의만을 위해 기존의 것을 무작정 바꾸는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사회로 향하는 또다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리함이 중첩된다는 것은 그 틈 사이에 끊임없는 그림자가 발생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아가는 방법을 쉼없이 고민한다면, 누군가는 이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뒤돌아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되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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