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 목표에 15억원 몰려..

‘샤플’이 크라우드 펀딩 업체 ‘와디즈’를 통해 선판매한 캐리어와 백팩

제조업은 시간이 많이 들고, 실패 확률도 높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하드웨어는 어렵다(Hardware is hard)'라는 말이 진리처럼 통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타트업으로서 제조업에 도전한 기업이 있다. 바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샤플’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먼저 제품 아이디어를 올려 돈을 모은 후 일정 수량 이상 신청이 들어와야 생산할 수 있다. 소비자는 기업이 올려놓은 아이디어를 사는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 기간이 마무리 된 시점에 일정 수량 이상 신청이 들어왔다면 해당 기업은 생산에 들어간다. 소비자는 주문 후 물건을 받기까지 2개월이 걸린다.

지난 7월 26일 ‘샤플’은 크라우드 펀딩사이트인 ‘와디즈’에서 15억원이라는 최고 매출 기록을 달성했다. 샤플이 내놓은 제품은 백팩, 캐리어 2종(20, 25인치)이었다. 가격은 각각 2만 9000원, 3만 9000원, 4만 9000원으로 세 가지를 합쳐 4만개 가량 팔았다. 샤플이 내놓은 캐리어가 인기를 끈 비결은 세련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이었다. 백팩과 캐리어의 디자인은 나건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가 했고, 제품 생산은 중국에 있는 유명 가방 브랜드 생산 공장에서 한다.

‘샤플’은 사실 와디즈와 같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 와디즈에서 판매한 이유는 제품을 통해 샤플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샤플 서비스에서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이렇다. 제품 디자이너가 샤플 플랫폼에 디자인을 올린다.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본 소비자들이 ‘좋아요’를 500개 이상 누르면 선판매를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일반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와 같다. 하지만 샤플은 제품을 생산하고 배송까지 대행한다. 선판매 당시 제품 호응도(‘좋아요’ 개수)에 따라 매출의 일부를 디자이너에게 지급한다.

기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사업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역할만 했다. 그래서 가끔 사고가 생긴다. 돈을 받고 물건을 만들어 투자자 혹은 구매자에게 배송해야 할 업체들이 돈만 받고 물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샤플이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샤플이 직접 생산, 배송하기 때문이다.

'샤플'에서 디자이너가 올린 아이디어가 상품화되는 과정

중개에 머물지 않고, 생산과 유통을 전담한다는 점은 사실 샤플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퀄키(Quirky)라는 크라우드 소싱 아이디어 상품 개발 플랫폼은 자신들의 플랫폼에 모인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격조건 없이 모든 대중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 현실화하다보니 실용성과 질적인 측면에서 떨어지는 상품이 많이 생산됐다. 또한 유통 채널을 다방면으로 넓히다 보니, 그에 따른 수수료 부담이 커져 상품가격이 비싸졌다. 결국 퀄키는 시장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얻게 됐다. 이러한 ‘퀄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샤플은 전문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대학 졸업자들에게만 디자인 아이디어를 받는다. 신예 디자이너와 유명 디자이너의 제품을 동시에 생산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여 디자인과 상품의 질을 높여갈 계획이다.

샤플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중 다른 한 가지는 가격이다. 저렴한 가격이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샤플이 상품을 이렇게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유통과정 생략 덕분이다.

샤플의 진창수 대표는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완조립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상세 페이지를 통해 사용자가 조립법과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 별도의 화려한 포장 없이 박스에 넣어서 반조립 상품을 보내기 때문에, 생산 단가의 40%가 낮아진다. 배송은 광저우에 있는 자체 물류 센터에서 직접 45개국으로 배송한다. 여기서 컨테이너에 들여올 때 부가되는 중간 유통 비용이 생략된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이 창업·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투자환경 개선 작업에 대대적으로 돌입하면서 민간 소액자금의 시장 유입을 주도해온 크라우드펀딩 업계가 기대감에 부풀었다. 샤플은 이에 힘입어 8월 중에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 가방 3종을 올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15억이라는 기록을 수립하며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시장에서도 샤플의 전략이 통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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