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누가 결정할까? 신일까? 인간일까? 미래에 대한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한 논란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던 만큼 오래된 주제이다. 최근 뉴스레터를 보다 보면 이런 논란이 다시금 떠오른다. 해가 다르게 각광받고 있는 숏폼(Short-from)을 볼 때 그러하다.

 

 

숏폼’이 이끌고 있는 도파밍 세상

 

쿠키리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디지털 마케팅의 일선에 있던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들면서, 검색엔진의 상위 노출을 만드는 콘텐츠가 구원 투수로 떠올랐다. ‘콘텐츠는 국률’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유튜브를 필두로 한 콘텐츠 마케팅은 숏폼이라는 새로운 포맷으로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숏폼은 유튜브와 달리 전문적인 식견과 언변을 크게 요구하지 않은 쉬운 포맷을 가지고 있어 제작에 부담이 없다. 또한, 찰라의 포인트를 담아낼 수 있는 영상 촬영과 편집 감각만으로 누구나 크리에이터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콘텐츠에 비해 문턱이 낮다. 창작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 챌린지를 통해 미디어 놀이에 동참할 수 있어, 숏폼은 크리에이터 경제를 본격화하게 만드는 또 다른 촉발제가 되고 있다.

 

구글, 메타,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이 숏폼으로 승부수를 두겠다고 선언한 것은 숏폼에 대한 소비자의 체류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숏폼의 시대를 예견하듯, ‘도파밍’이라는 키워드가 2024년 트렌드 책의 한 꼭지를 차지할 만큼 주목받고 있다. 반면 ‘숏폼 중독’이라는 부정적인 그림자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현재 우리는 숏폼의 두 얼굴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도파밍: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쾌락적 행동에 집중하는 태세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이나 유튜브가 등장했을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손바닥에서 무한 탐색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놀이에 무한정 빠져들었다. 숏폼의 과다 사용에 따라 사고력이 저하되고 집중력이 결핍된다는 의학계의 반응도 과거와 유사한 양상이다. 새로운 기기가 열어준 신기원은 중독 현상을 일으킬 만큼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숏폼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에 충분한 뉴폼(new form)으로 보이는 이유도 이러한 현상에 근거해서다.

 

그렇다면 숏폼이 가져오는 변화는 무엇일까?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뜬다는 것 이상으로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

 

*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릴스
*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릴스

 

관계’와 ‘관심’으로 이분되는 디지털 공간

 

언젠가부터 ‘디지털 세상’은 ‘개인화된 세상’과 같은 말이 되었다. 디지털 광고가 타기팅을 기반으로 개인에게 접근하는 것에 반해, SNS는 개인의 맺고 있는 ‘관계(Social)’ 중심의 세상을 보여준다. 여기에 숏폼은 관계가 아닌 ‘관심(Interest)’ 중심의 세상을 제시하며 SNS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개인의 세상을 구성한다. 최근에는 숏폼의 상승세로 인해, SNS도 인맥 기반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매개하는 관심 네트워크로서 그 역할을 확장하는 추세이다.

 

관계와 관심, 디지털 공간에서 어떤 차이로 나타날까? 보통 나의 SNS 타임라인에는 내가 올린 콘텐츠와 내가 팔로우 하는 사람들의 콘텐츠가 노출된다. 그리고, 그 콘텐츠에 달린 ‘좋아요’의 숫자는 내 팔로워들이 보여주는 호응의 정도이다. 내가 ‘좋아요’를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좋아요’를 눌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관계 기반 네트워크의 실체이다.

 

반면, 내 숏폼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은 내가 시청했던 콘텐츠와 유사한 취향의 것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올라온다. 내가 어떤 콘텐츠를 보는지에 따라 숏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더욱 강화된다. 누가 올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저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으면 무엇이든 선택 받는다. 숏폼에서 콘텐츠가 뜨려면 팔로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 더욱 중요하다. 팔로워가 없어도 콘텐츠 하나로 하루 사이에 몇 백만 뷰를 올릴 수 있는 곳이 숏폼이다.

 

이처럼, 광고가 아닌 유저 중심의 콘텐츠는 두 가지 메커니즘으로 돌아간다. 하나는 지인들로 구성된 사회적 관계망에서의 ‘사회적 자기’를 실현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철저히 자신의 관심사로 점철된 ‘본질적 자기’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숏폼 커머스’로 진화하는 관심의 공간

 

본질적 자기가 극대화되는 공간, 관심 콘텐츠로 빠르게 업데이트 되는 숏폼 플랫폼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영상’이 아닌 ‘추천 알고리즘’ 때문이다. 디지털이 기본적으로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는 공간임은 익히 알고 있지만, 우리가 숏폼의 알고리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사람’이 아닌 ‘콘텐츠’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알고리즘은 추천된 영상에 대한 유저의 반응에 따라 다음 노출될 영상을 결정한다. 그래서 내가 팔로워한 사람의 콘텐츠보다 나의 취향으로 인식된 콘텐츠가 보여지게 된다.

 

콘텐츠 기반의 알고리즘은 숏폼 플랫폼을 커머스 생태계로 확장시키는 동력으로 이어진다. 보통의 이커머스는 타기팅을 통해 제품을 추천하고 제안하는 방식이나, 숏폼이 보여주는 관심 커머스는 유저의 관심 여부에 따라 콘텐츠가 선택되니 타기팅 없이도 바로 구매로 유도하기에 용이하다. 애초에 관심 콘텐츠로 보여지는 것이니 타깃을 필터링하는 과정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마케터의 눈에 숏폼 알고리즘에는 콘텐츠를 바로 커머스로 연결시키는 유통 기능이 내장된 것처럼 보인다.

 

 * 그림 출처: 숏만 연구소
 * 그림 출처: 숏만 연구소

 

일상으로 스며드는 쇼핑 : 관심 커머스의 확대

 

이러한 방식은 쇼핑의 행태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숏폼 콘텐츠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디지털에서 정보를 찾는 방식이 ‘검색(search)’에서 ‘탐색(explore)’으로, 구매에 이르는 과정이 쇼핑을 편하게 해주는 ‘이커머스(E-Commerce)’에서 쇼핑을 즐겁게 해주는 ‘관심 커머스(Interest Commerce)’로 이동하고 있다는 현상을 대변한다.

 

지금까지 마케터는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문제인식→정보탐색→대안평가→구매결정’이라는 소비자의 구매의사결정 모델을 활용해왔다. 하지만, 새로운 미디어들이 등장할 때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마케터의 예상을 벗어나곤 했다. 지금도 ‘제품의 상세 정보’보다 ‘일상의 경험 정보’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는 추세이지 않나. 이제 구매는 ‘목적형 쇼핑’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숏폼 같은 관심 플랫폼으로 트렌드가 옮겨갈수록 ‘발견형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질 것이다.

 

집에서 쓰는 제품이 떨어졌을 때 ‘대시(Dash)’ 버튼을 눌러 상품을 주문했던 아마존의 사례*와 같이, 지금은 쇼핑몰을 방문하지 않고도 일상의 콘텐츠를 보며 바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시대이다. 숏폼의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게 되면, 사람들이 커머스를 찾는 일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문제인식정보탐색대안평가구매결정’이라는 쇼핑에 대한 의사결정 자체를 귀찮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고객을 추적하려고 만든 구매여정지도가 무색해지는 상황에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존 대시: 식품·음료나 생필품 등을 아마존 대시 버튼에 지정해두면, 버튼을 한번 누르는 것만으로 자동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로, 지금은 구독과 AI 스피커에 밀려 단종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커머스가 펼쳐지는 곳, 이제 디지털은 일상이 광고인지 정보인지 알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넘쳐나는 콘텐츠 사이에서 빨리 눈에 띄게 하기 위해 콘텐츠는 더욱 짧고 자극적이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인 디지털을 고객의 구매여정에 놓인 무수한 접점들로 볼 것이 아니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넘은 더 넓은 차원의 '소비자 생활 공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숏폼 마케터가 잊지 말아야 할 자세

 

숏폼에서 잘 만든 콘텐츠란 ‘반응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뜻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달라진 공간 활용성만큼 콘텐츠 제작에도 다른 문법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숏폼 기획을 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몇 가지 팁이 있다. 단순히 ‘짧은 영상’이 아닌 ‘압축된 영상’을 제작할 것, 유저 피드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논란을 일으키는 시나리오를 구성할 것, 제목이나 자막, 사운드 등의 후킹 요소로 첫 1초를 사로잡을 것,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로 포장할 수 있도록 제품 기획부터 신경 쓸 것, 콘텐츠 제작과 오퍼레이션을 동일 비율로 신경 쓸 것, 광고대행에 맡기기 보다 자체 숏폼 콘텐츠 전문가를 양성할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숏폼 역시 무수한 디지털 채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오가닉 트래픽의 생성과 관리, 확대를 위해 전체적인 미디어믹스 차원에서 숏폼을 디자인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미디어 관점에서 벗어나, 생활의 공간으로서 디지털 콘텐츠를 기획하는 라이프 디자인의 안목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숏폼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유저 피드백을 높이기 위해 더욱 더 자극적인 콘텐츠에 치중하기 쉽다. 그리고 종국에는 숏폼 중독을 강화시키는 안 좋은 선례로 남게 된다.

 

궁극적으로 숏폼의 콘텐츠는 어때야 하는가? 소비자의 일상을 채우게 될 콘텐츠가 필요 이상의 자극으로 치달아 가서는 안된다. 숏폼이 분출하는 도파민에 취해 사고력이 낮아지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더 이상 낙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생각하고, 몰입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는 생산적인 도파민을 통해 즐거움의 감각을 깨우는 새로운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이 좀더 활력을 띄기 위해서는 건강한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알리고 브랜드를 퍼뜨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너도나도 숏폼을 한다고 당장의 성과만을 바라보며 숏폼에 뛰어들지는 말자. 미래를 인간이 주도해 나갈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 장착하고 있어야 미래를 이끄는 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 본 기고문은 한국마케팅협회 디지털마케팅 CEO과정 22기 교육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의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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