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외교, 귀여운 얼굴에 숨겨진 그 이면

 

 

이태백과 두보에 버금가는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산문 <맥빙찬>에서 판다를 남방 계곡에서 태어난 사족동물로 묘사했다. 한고조의 후비인 효문태후는 판다의 두개골과 함께 묻혔고, 당태종은 판다 두 마리를 일본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렇듯 판다는 아주 옛날부터 중국의 상징이었다.

  판다 외교는 중국이 관계 발전을 위해 상대국에 판다를 보내는 외교로, 1941년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국이 판다를 외교에 활용하는 것은 판다가 중국에서만 생식하는 희귀 동물인 데다가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그 인기가 매우 높은 데 따른 것이다.

  1972년 냉전 시기, 저우언라이는 미국 닉슨 대통령에게 판다 두 마리를 선물했다. 한 달 동안 120만 여 명의 관광객이 판다가 있는 미국 워싱턴 동물원을 찾을 정도로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하였다. 판다로 인해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 적으로 맞섰던 ‘중공’은 불과 20여 년 만에 귀여운 판다의 ‘주인’이 되었다.

  판다 효과를 톡톡히 본 중국은 이른바 ‘판다 외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800여마리 밖에 되지 않는 희귀종이지만 중국의 국익을 위해 타국에 임대 형식으로 선물했다. 18개 나라의 50마리 이상의 판다를 보냈다. 판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그대로 중국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되기를 바랐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판다 외교가 맞물리면서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다. 실제로 판다를 외교에 활용한 이후 권위주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었고,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이 줄었었다고 한다. 2002년 중국에 대한 한국의 호감도는 66%에 달했다. 대중 호감도가 80%를 상회하는 서양 국가도 있었다. 요즘 뜨는 한국의 ‘푸바오’도 판다 외교의 사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최근, 판다 외교의 흐름이 끊겼다. 여러 나라에서 줄줄이 중국에 판다를 반환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판다의 ‘회귀’이다. 판다 반환에는 임대계약 만료, 막대한 사육비 부담, 비싼 임대료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즉 미국 등 서방국가, 그리고 여러 나라와 중국의 관계가 지난 수년간 크게 악화되며, 더 이상 판다가 중국 외교의 상징으로 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판다이다. 판다의 번식을 위해 어마어마한 재정을 투입하지만 번식과 적응에 성공한 판다는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대다수는 방사조차 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정말 외교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늑대 전사' 식의 외교를 하지 말고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선물처럼 주고받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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