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소수의 독특한 성향으로만 여겨졌던 이 ‘비건’은, 최근 들어 글로벌 기후 변화 대응과 동물복지를 위한 친환경 트렌드로 발전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동물과 자연 환경 보존에 관한 관심이 친환경적인 소비 트렌드로 표현되며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한국채식비건협회에 따르면, 세계의 비건 인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의 비건 인구 역시 2018년에서 2021년까지 약 100만 명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비건 인구의 증가에 따라, 옛날에는 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비거니즘 문화가 이제 ‘비거노믹스’로 자리 잡고 있다. 비거노믹스(veganomics)란 채식주의를 뜻하는 ‘vegan’과 경제 ‘economics'의 합성어로, 비건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비거노믹스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인 대체육 시장의 규모는 2015년부터 2021년 사이 5년 동안 50%나 팽창했다. 식품 분야뿐만 아니라 화장품, 패션, 생활용품 등도 기존의 동물성 원료 대신 식물성 원료로 만드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산업 트렌드로 비거노믹스가 부상함에 따라 관련 산업들은 더욱 규모를 더 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근에 몇몇 기업이 선보인 비거노믹스에 대해 살펴보자.

식물성 대체육 활성화에 기여할 식물성 양고기 개발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이유로 식물성 대체육 판매가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식물성 대체육 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식물성 양고기가 개발되었다. 미국 농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미국인들이 소비하는 양고기의 양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국내에서 또한 양고기 소비량과 섭취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서도 국내의 양고기 소비량은 2011년 6500톤에서, 10년 후 1만 9300톤으로 크게 늘었다. 이렇게 양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섭취가 증가하면서, 양고기의 대체 식품에 대해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기업 블랙쉽푸드는 양고기 대체육을 개발해 눈길을 끌었다. 블랙쉽푸드는 식물성 재료들을 사용해 양고기의 맛을 재현하는 독자적인 공정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독특한 양고기의 향을 구현하기 위해 동물과 식물의 분자를 식별한다.
블랙쉽푸드는 자체적으로 실시한 모금을 통해 1805만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받아내며 대체육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음을 증명했다. 특히, 개발된 양고기는 할랄 음식을 섭취하는 중동 지역의 기업들에게서 높은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엔 꿀벌 없이 생산된 꿀이 있다고?
유럽의 소비자들은 꿀벌 없이 만든 꿀을 맛볼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지난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타트업인 멜리비오가 최초로 꿀벌 없는 꿀을 개발한 후 유럽 시장으로의 진출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멜리비오는 ‘베러 푸디’라는 브랜드명으로 약 75,000개의 유럽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멜리비오가 꿀벌 없는 꿀을 개발한 것은 기존의 벌꿀 산업이 꿀벌들에게 매우 잔인하며 그 과정이 지속가능성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꿀벌 한 마리는 약 12티스푼 정도의 벌꿀을 생산하며, 이렇게 생산된 꿀은 벌의 중요한 영양 공급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벌꿀 산업 과정에서는 꿀벌에게서 꿀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꿀벌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꿀벌을 죽이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양봉업자는 여왕벌의 도망을 막기 위해 여왕벌의 날개를 자르거나 화학 방충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꿀벌들은 면역력이 약화로 인해 집단 폐사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봤을 때, 멜리비오가 개발한 비건 꿀은 식물성 시장에 혁신적인 개발품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타임지에 의해 ‘2021년 100대 최고 발명품’의 특별 부문에서 수상했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 이외에도, 동물을 착취하거나 인간을 위해 이용하는 산업에 반대하는 비거니즘 문화가 화장품, 패션, 생활용품 등 전반적인 산업 분야로 확장되는 중이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과 같은 국내의 화장품 업체도 기존의 원료를 식물성으로 대체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현대차, 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 또한 차량 안에 비건 가죽을 적용하는 등 비건 맞춤 제품을 내놓았다.
비건 제품은 대부분 가격대가 높아 대중화에 어렵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거노믹스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는 비거니즘 문화의 중심에 있는 MZ세대가 특히 가치 소비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동물과 환경을 보호한다는 그들의 신념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MZ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비거노믹스를 크게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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