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답답해, 1.5로 보자” 콘텐츠를 시청할 때 한 번쯤 들어 봤을법한 문장이다. 원래 속도로 보면 전개가 너무 느리니 1.5배속으로 빠르게 시청하자는 의미의 문장이다. ‘리퀴드 소비’는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책에서 등장한 용어다. OTT 산업이 발달하며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텔레비전과 영화관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해야 했다. OTT 서비스에서는 빨리감기, 건너뛰기 등 다양한 기능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OTT 서비스들 / 출처: SK하이닉스 뉴스룸 "TV의 현재와 미래, 모두 OTT에 답이 있다" 기사사진 캡쳐
OTT 서비스들 / 출처: SK하이닉스 뉴스룸 "TV의 현재와 미래, 모두 OTT에 답이 있다" 기사사진 캡쳐

미디어 환경이 재구성되며 새로이 등장한 소비 트렌드 중 하나가 ‘리퀴드 소비’라는 것이다. 리퀴드 소비가 사용되는 건 사회 전체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시스템에 따라 형성된 고체(솔리드) 상태에서 특정한 형태를 갖추지 않고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는 액체(리퀴드) 상태로 변화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리퀴드 소비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주기가 짧고 단시간에 다음 소비로 이동하는 단명적 특징이다. 둘째, 이용 권한 중심이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대여한다. 세 번째는 탈물질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정도의 기능을 얻을 때 물질을 덜 사용한다.

 

주기가 짧고 단시간에 다음 소비로 넘어가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빨리감기가 대표적이다. OTT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봐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장면은 넘겨버린다. 두 번째로 이용 권한 중심은 OTT 서비스로 대표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하나를 사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권을 사서 구독하는 형식으로 소비한다. 무언가를 꼭 봐야 한다는 압박감과 의무감이 과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탈물질적이라는 것은 두 번째와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소유하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아졌다.

 

‘빨리빨리’의 세상 대한민국에서 리퀴드 소비는 일상이다. 숏폼 콘텐츠가 유행이 된 지도 오래다. 숏폼 콘텐츠도 이제 끝까지 보지 않는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가 아닌 편집해놓은 삼 분짜리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저자는 작품의 공급 과잉과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는 가치관 등이 리퀴드 소비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리퀴드 소비는 사람들의 일상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정보를 얻어야 하고, 그것이 경쟁력이 된다. 사회는 그 능력을 요구한다. 웃음과 여유조차 빠르게 얻고 다음 일을 하려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있을 것이다. 어느새 이러한 행태가 평범한 것이 된 시대가 왔다.

 

여유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여유를 가질 때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 있다. 현대 사람들은 권태를 두려워한다. 리퀴드 소비가 그 예시다. 지루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지루해지는 것은 때로 필요하다. 우리가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때 비로소 주위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빠르게 지나가는 콘텐츠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자의 선택이 다를 것이지만 오늘, 아니 지금만큼은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권태로움을 즐겨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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