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편해져도 너무 편해졌다. 한겨울이 되어야만 먹을 수 있던 딸기가 장마철에도 버젓이 팔려 나가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 구석진 소품 가게까지 가야만 살 수 있던 한정판 포스터를 내 방 침대에 앉아 손가락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의 규모는 비약적으로 확장되었지만,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 반경은 어떠한가? 큐레이션, 구독경제… 어떻게든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여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 세상이 변해버렸다. 문만 열면 내가 원하는 것이 등장한다. 우리는 더이상 기다리거나, 찾아 헤매일 필요가 없다.

문 앞 배송 시스템이 가진 폭발적인 인기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바로 식재료 판매이다. 그 첫 타자는 2014년 설립된 컬리(Kurly)이다. 컬리는 ‘샛별배송’이라 불리는 새벽배송 시스템을 주력 아이템으로 하여, 2022년 현재 자체 물류창고를 확보하고 운수회사인 CJ대한통운을 통한 위탁배송을 실시하는 등 식재료 배송계의 선두 주자로 여겨지고 있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쿠팡의 로켓배송, 이후 시작된 신세계 이마트몰의 ‘SSG(쓱)배송’, 의류 쇼핑몰 에이블리의 ‘샥출발’ 등 택배를 이용한 기존의 전자상거래의 한계를 극복하고, 되려 시공간의 제약 없이 본인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여 받아볼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Z세대의 마음을 뒤흔든 ‘구독경제’와의 결합 또한 주목할 만 하다. 핵가족이 증가하고, 소비의 선택권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수많은 비교군 중 스스로 정보를 비교해 자발적으로 소비를 선택하고, 이에 따른 결과를 책임져야만 하는 기존의 소비 형태를 넘어서 ‘실패 없는 소비’의 안정성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구독 서비스는 모두 각자 나름의 토픽을 가지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인스턴트 음식이 만연화되며 제철 음식을 먹기 힘든 사회가 되자, 갓 데친 제철 나물을 배달해주는 ‘나물투데이’, 제철 음식과 반찬은 물론 전국 각지에 있는 맛집 음식을 때에 맞춰 보내주는 ‘잘잘레시피’ 등이 등장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이어트식이나 채식 위주의 건강식을 제공하는 ‘스윗밸런스’, 채식주의자를 위해 동물성 재료를 불포함한 비건(Vegan) 빵을 판매하는 ‘브레드블루’, 당뇨나 고혈압 등의 신체 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식이 요법이 반영된 음식을 제공하는 ‘닥터키친’ 또한 특수한 기호의 소비자들에게 자신 만의 특수성을 어필한다.

식생활이 해결되었다면, 다음은 라이프 친화적인 토픽이다. 면도기를 자주 사용하는 남성을 위해 교체 주기에 맞게 면도날을 배송해주는 ‘레이지소사이어티’는 지난 2021년 프리미엄 멤버십 서비스인 ‘슈퍼멤버십’을 론칭하여 연회비를 낸 고객에게 쉐이빙 젤과 자사 면도날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본격화하였다. 월 단위의 배송 간격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생리대 한 장을 사면 한 장을 기부한다’는 원리를 기반으로 착한 생리대를 판매하고 있는 ‘산들산들’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런드리고’, ‘세탁특공대’ 등의 기업은 상품을 배송하는 일방향적 소비를 넘어서 ‘빨래’라는 젊은 층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꼬집는다. 세탁이 필요한 의류나 이불 등을 문 앞에 내놓고 세탁을 요청하면 기업에서 직접 이를 수거, 세탁하여 다시 문 앞으로 가져다 두는 것이다. 수건 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블메이드’와 같은 기업 또한 흥미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수령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1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상품을 대상으로 소비자 개인의 취향이나 소비 특성을 분석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고객의 취향에 맞는 전통주를 배송해주는 ‘술담화, 그리고 와인 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퍼플독’이 있다. 큐레이션이라는 시스템의 특성 상 개개인의 개성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근거로 경쟁력이 부여되고, 이러한 원리는 ‘감성재’ 혹은 ‘사치재’의 영역 내 큐레이션 시스템의 적극적 도입이라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개인의 미세한 취향 차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패션에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의류 큐레이션 커머스 플랫폼 ‘댄블’은 3050 남성을 대상으로 개별 이용자가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 가격대, 신체 사이즈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코디를 골라준다. 구매자가 이를 선택하면 코디 그대로 구매자에게 이를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여성의 체형이나 가슴 모양에 맞춰 속옷을 배송해주는 ‘월간, 가슴’ 또한 여성 이용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밖에도, 단순히 상품을 전달해주는 것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사례 또한 무궁무진하다. 코로나19시대를 맞아 집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악기를 대여해주는 것을 넘어 수업이나 모임과 같은 커뮤니티를 연결해주는 ‘문카데미’, 유아 교육 및 가족 공동 취미 개발을 위해 랜덤으로 물품을 배송해주는 ‘문앞비일상’ 등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사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집 밖을 나서고, 사람을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디지털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COVID-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더이상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를 마주하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대문 앞 작은 공간 속에 자리하게 될 거대한 세상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