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과 <한산>을 중심으로 변화된 한국 영화 트렌드 살펴보기

영화 '명량'과 '한산' 포스터/CJ ENM,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명량'과 '한산' 포스터/CJ ENM, 롯데 엔터테인먼트

지난 2014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천만 관객' 타이틀을 달성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다. <명량>은 김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영화다. 이순신이라는 역사적인 인물과 카리스마로 유명한 배우 최민식의 조합은 상영 전부터 대중에게 기대감을 불어 넣었다. 기대감에 부응하듯이, <명량>은 개봉 3일 만에 관객 수 200만 명을 넘어서며, 당시 가장 빠른 속도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개봉 12일째 되는 날 오전, 누적 관람객 수 천만을 돌파하며 '천만 관객' 타이틀을 가진 10번째 국내 영화가 되었다. <명량>은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최고의 해상 전투 영화다" 등의 호평을 받으며 CGV 골든에그(실관람평지수) 91%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올해 7월, <명량>의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상영됐다. <한산>은 전작과 또 다른 매력으로 관중을 사로잡으며 CGV 골든에그 96%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 중이다. 씨네 21과 김한민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명량>의 속편을 제작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을 것이다"는 말에 김 감독은 "맞다. 그래서 8년이 걸리지 않았나. 어떻게 보면 8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 <명량>때만 해도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안되면 되게 하자는 정신으로 하나하나 몸으로 겪어가며 완성했다. 그래서 <한산>과 <노량: 죽음의 바다>는 절대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 프리프로덕션의 강화를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며 대답했다. 수많은 고심이 들어간 만큼, <한산>은 전작과 확실한 차별적 포인트를 제시하며 전작을 보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뜨거웠던 <명량>의 이순신, 차가웠던 <한산>의 이순신

영화 '명량'과 '한산' 스틸컷/CJ ENM,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명량'과 '한산' 스틸컷/CJ ENM, 롯데 엔터테인먼트

사실 <명량>은 호평과 더불어 수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영화의 극적인 전개와 감상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과도하게 편집했다는 지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적장 구루시마의 목을 베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실제 이순신의 일기 <정유일기>에서는 "나는 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고리를 던져 끌어 올렸다. ··· 곧 명령하여 토막으로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여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명량>에서는,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한 상상력이 여러 부분에서 발휘되었다.

나아가, 민족주의적이고 신파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전투를 더욱 치열하게 묘사하기 위한 여러 픽션 장치들이 오히려 '과하다', '거북하다'는 평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산>에서는 달랐다. 전작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자, 전쟁의 생동감을 강조하기 위해 자막을 넣는 등의 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주경제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전쟁의 밀도감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전쟁이 가진 사운드 적인 에너지가 필요해요. 그런데 대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운드를 눌러야 하거든요."라며 사실적 묘사를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또한 이동진 평론가는 <한산>이 인물의 서사보다 전투 상황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명량>보다 심플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전투를 그려낸 점에서 '훨씬 나은 영화'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한산>은 과잉을 덜어내고, 전투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집중하여 이순신 장군이 겪었을 고뇌와 심리적인 고통을 담백하게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국뽕'으로 몰릴 수 있는 과격하고 호전적인 장군의 모습 대신, 절박한 상황에서 차가운 이성을 유지해야 했던 장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국형 신파에 대한 냉담한 반응, 왜?

영화 '비상선언' 스틸컷/쇼박스
영화 '비상선언' 스틸컷/쇼박스

한국 영화 트렌드는 확실히 '차갑게' 변했다. '얼마나 감동적인지'보다 '얼마나 구체적인지'에 주목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록 좋은 영화라고 평가 받는다. <한산>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비상선언>은 이러한 흐름에서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화의 전형적인 신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놓고 등장하는 '울기 위한' 장면과 과잉된 정서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렸던 한국형 신파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이승희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K-내셔널리즘'의 붕괴라고 설명한다. 한국형 신파는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감정을 느낄 것이다'라는 일종의 보편화에 기반하지만, 이제 그러한 감정적 보편성이 깨졌다는 의미이다.

개인주의 사회를 넘어, 코로나19 이후로 우리 사회는 '나노 사회'에 돌입했다. 지극히 개인주의화된 사회 분위기에 의해, 생활 패턴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개인화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 또는 보편적인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즘, 대중들은 무조건적인 감정 호소형 영화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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