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수십 명의 중국 유학생들이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크리스찬 디올 매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해당 시위는 디올이 중국 전통 의상 ‘마멘췬(馬面裙)’을 문화적으로 도용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를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의 검은색 주름치마는 디올의 2022가을 컬렉션 제품으로, '디올 고유의 특징적인 실루엣'을 갖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해당 제품의 디자인이 말 얼굴 형태를 띤 마멘췐의 외형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디올 고유의 디자인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올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으나,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제품을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 삭제했다.

문제의 디올 스커트 / 디올 (좌) 중국 전통 의상 마멘췬 / 시나 웨이보 (우)
문제의 디올 스커트 / 디올 (좌) 중국 전통 의상 마멘췬 / 시나 웨이보 (우)

시위 이후, 국내에서도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에 대한 관심이 부상했다. 문화적 전유, 또는 문화적 도용은 통상적으로 착취적이거나 차별적인 방식으로 소수 집단의 문화적 요소들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문화적 도용이 인종차별의 연장선이라는 점에 있어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문화적 전유를 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문화적 전유에 대한 인식이 낮지만, 해외에서는 2010년 중반부터 중요하게 다뤄졌다. 마크제이콥스의 SS17 컬렉션은 런웨이에서 파스텔 색상의 락(lock) 헤어스타일을 선보인 후 많은 비난을 받았다. 유색인족 차별의 대상이 되는 락 헤어스타일을 백인 모델들의 미적 요소로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해당 컬렉션의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해당 스타일이 흑인 문화의 락 헤어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여러 커뮤니티에서 문화적 요소의 맥락과 기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국적이고 미적인 요소로만 사용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국내에서도 문화적 전유가 지적된 사례가 있다. 2020년에 발매된 아이돌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의 뮤직비디오는 소품으로 힌두 신 Ganesha를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힌두 문화에서는 Ganesha를 바닥에 놓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해당 뮤직비디오에서는 바닥에 놓여 있어 더욱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재한 상태에서 미적인 소품으로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소속사의 사과와 함께 새로운 영상으로 대체되었으나, 많은 해외 팬들에게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외에도 K 팝 시장의 성장으로 아이돌의 의상, 헤어스타일이나 뮤직비디오가 문화적 도용으로 지적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문화적 도용의 기준이 모호하고, 제품이 디자인되는 과정을 알 수 없기에 독창적인 창작물인지 도용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그러나, 세계화로 인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 만큼, 국내 기업들 또한 문화적 전유에 대한 이슈를 인지하고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다른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디자인은 그 출처를 명확히 이해하고, 해당 문화적 요소의 역사적 이해를 통해 그 사용이 적절한지 고민해 볼 필요성이 있다.

저작권자 © 소비자평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