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나만의 서사가 필요

지난해 10월 Mnet이 방영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방영 기간 8주 동안 각종 화제성 지수 1위를 기록했고,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누적 조회수는 3억 4000만 뷰에 달한다. 종영 이후

 

기획한 전국 콘서트는 1분 만에 매진되는 등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기존의 숱한 경연 프로그램과 비교되는 스우파의 성공 비결은 바로 “서사(narrative, 敍事)”에 있다. 댄서들의 화려한 실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고뇌와 노력의 흔적을 녹여내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출연진들 역시 경쟁을 부추기는 방송사의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걸어온 삶을 무대에 펼쳤다. 우승을 위한 춤이 아닌 정체성을 담아낸 춤을 통해 소통했고, 어긋났던 인연이 재회하기도 했다. 탈락의 순간에도 “결과에 책임을 지고,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라며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꾸밈없는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스우파는 일에 대한 자존심과 존중을 서사의 축으로 삼았고, 대중들의 인식 속에 조연일 뿐이었던 댄서들의 발자취를 그려내 공감을 이끌었다.

 

서사란 무엇일까?

서사는 스우파의 사례가 말해주듯 이야기와 다르다. 이야기가 단지 내용(What)이라면, 서사는 말하는 주체가 창의성을 갖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 집중한다.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받아들이는 관점이 달라지듯 어떻게(How)에 방점을 둔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맥락을 갖춰 전달할수록 서사의 힘은 강해진다.

매년 소비의 트렌드를 분석해 발표하는 김난도 교수 역시 이러한 서사의 중요성을 주목했다. 2022년에는 보이지 않는 서사가 자본의 역할을 한다며 ‘내러티브 자본’ 개념을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개인과 기업이 자기만의 서사를 내놓을 때 대중을 단박에 사로잡는다고 한다. 특히 미증유 전염병과 공존하게 된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필수라고 한다. 실제로 정체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온 많은 브랜드와 기업의 성공 이면에 ‘서사’가 숨어있다.


스파이더맨

코로나 19의 여파 속에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으니 마블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다. 1월 14일 기준 누적 관객수 672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달했다. 개봉 10일 만에 전 세계 흥행 수익 2위를 기록하는 등 연일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 동시기 개봉한 <킹스맨>과 <매트릭스>는 기대감과 달리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과거 성공한 시리즈물의 후속편이란 공통점을 지녔지만, 극과 극의 성적표를 받았다. 반응이 이처럼 엇갈린 원인 역시 ‘서사’에 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이제껏 영화계에서 보지 못한 멀티버스 개념을 도입했다. / 소니 픽쳐스

 

스파이더맨은 캐릭터가 만들어진 이래 판권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었었다. 지난 20년간 서로 관계없는 세계관의 영화가 제작돼 계보가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각각의 영화는 흥행을 이루었어도, 이내 바뀐 주연 배우와 설정에 흥미를 잃고 이탈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이에 마블은 ‘멀티버스’를 통해 이제껏 영화계에서 경험하지 못한 ‘서사’의 재미를 선사했다. 멀티버스는 다른 차원의 우주가 서로 겹치지 않는 세계관을 가졌다는 개념으로, 주인공의 세계 외에도 수많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덕분에 현재 설정 아래 과거 작품들의 스파이더맨과 악당들을 등장시킬 수 있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이름 아래 당위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을 추억하는 관객들은 물론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도 매료시켰다. 한 작품 안에서 내용을 전개한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해 외부 요소를 끌어들인 ‘서사’가 호소력을 갖춘 결과이다.


방탄소년단: 진정성을 갖춘 청춘의 고민

중소 기획사 아이돌로 출발한 “방탄소년단(BTS)”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었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차트에 줄을 세우는 등 연일 놀라운 행보를 이어간다. 이처럼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들 역시 ‘서사’의 힘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치열한 음악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방탄소년단은 발표한 곡마다 ‘청춘의 고민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음악에 담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멤버들이 앨범 작업에 참여해 성장 과정에서의 고민을 직접 그려내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대중에 전달했다. 열정페이나 N포세대 등 사회 현상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을 선보이기도 했다. 청춘의 보편적인 감성과 경험을 자극한 그들의 서사는 지역을 막론하고 공감을 샀다. 유튜브를 비롯한 디지털 매체의 발전과 발맞춰 더욱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이 공개한 뮤직비디오 역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 Fake Love 뮤직비디오 캡쳐

노래와 더불어 발표하는 뮤직비디오나 사진 역시 서사의 일부로 활용했다. 전달하고 싶은 의미와 모든 활동을 연결했다. 덕분에 세계의 팬들은 직접 노래 가사를 분석도 하고 뮤직비디오에 숨겨진 뜻을 찾기도 한다. 새로 발매하는 곡마다 이전과 비교해 단서를 발견해 공유도 한다. 해석에 답이 없다 보니 팬들 스스로 능동적으로 방탄소년단의 ‘청춘의 고민’이라는 서사 아래 결집하고 몰입하게 되었다.


파타고니아: 환경을 위한 사업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환경 보호가 이윤 추구를 앞선다는 ‘서사’를 그린다. 1973년 창설된 이래 최고의 제품은 만들되 환경피해를 유발하지 말자는 철학을 고수한다.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소비자의 지지를 받아 선한 영향력을 펼친 기업으로 알려졌다.

모든 제품을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며, 그 과정 역시 윤리적 절차를 따른다. 화학 살충제를 쓰지 않기 위해 100% 유기농 목화만 사용하며, 코끼리 상아 대신 타구아넛 열매를 가공한 단추를 제작했다. 해진 옷을 수선해 입으라는 취지에서 바느질 도구를 주고, 심지어 새 옷을 사려는 고객에게 중고 장터를 확인하라고 권장하기도 한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에 제품 가격보다 큰 환경비용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 메시지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11년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를 위해  자사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는 광고를 올렸다. / 뉴욕타임즈 광고
2011년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를 위해  자사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는 광고를 올렸다. / 뉴욕타임즈 광고

또한, 파타고니아는 제품을 판매한 매출 일부를 자연에 돌려주기도 한다. ‘지구를 위한 1%’ 활동이다. 직원 채용과 홍보대사 선정 시에도 환경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를 최우선으로 둔다. 이처럼 브랜드의 서사를 고집한 파타고니아는 친환경을 홍보 수단으로 접근하지 않으며 환경에 도움이 되는 소비 활동 자체를 장려한다. 이는 환경 위기를 직면한 시대에 매력적인 서사로 다가와 대중의 인식에 자리했다.


나만의 서사가 곧 경쟁력

코로나 19가 2년 넘게 지속하며 일시적 현상을 넘어 적응해야 할 중장기적 과제로 당면했다.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다는 막연한 희망보다는 새로운 상황에 발맞출 준비를 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이 보여주듯, 공감대와 매력을 갖춘 ‘서사’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제는 우리도 “나의 서사가 무엇일까?” 고민해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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