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매체 노출에 대한 책임 잣대

(사진=유튜브에 '오징어 게임'을 검색한 화면 캡처)
(사진=유튜브에 '오징어 게임'을 검색한 화면 캡처)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뜨겁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은 11월 5일자를 기준으로 오징어 게임이 43일째 드라마와 예능 등 TV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순위를 정하는 '넷플릭스 오늘 전세계 톱 10 TV 프로그램(쇼)' 부문에서 1위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를 넘어 오징어 게임은 각종 예능, 마케팅 업계를 사로잡으며 국내외에서 그 파급력을 자랑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청소년 관람 불가(이하 청불) 등급으로 시청 제한 연령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연령층이 사용하는 유튜브에 '오징어 게임'을 검색했을 때, 주요 에피소드를 요약해 결말까지도 알 수 있게끔 편집된 영상들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유튜브에 뜨는 '오징어 게임'의 연관 검색어 화면 직접 캡처)
(사진=유튜브에 뜨는 '오징어 게임'의 연관 검색어 화면 직접 캡처)

원작은 청불 콘텐츠지만, 여러 SNS에 올라온 클립 영상들은 나이 제한 없이 시청이 가능하다. 물론 유튜브에서 성인 인증이 필요한 영상으로 제한이 걸릴 가능성이 있어 원작의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은 대부분 편집되어 올라온다. 그럼에도 오징어 게임의 연관 검색어에는 선정적인 장면이나 그 장면이 나오는 특정 회차를 찾는 사람들의 관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와 같이 원작의 무분별한 재생산은 해당 작품이 청불 등급을 받은 이유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비춰진다.

오늘날 아이들이 콘텐츠를 접하는 경로는 과거보다 다양해졌다. 유튜브만이 아닌 틱톡, 인스타, 페이스북 등 대부분의 SNS에서 큰 어려움 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하거나, 나아가 스스로 생산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올해 3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 주요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청소년들의 '인터넷 개인방송 및 동영상 사이트', '인터넷/모바일 메신저'의 이용률은 93.0%가 넘으며, 지난 16년과 18년 조사 비율에 비해 그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 아동, 청소년이 콘텐츠를 접하거나 참여하는 양상은 급변하고 있으며, 단순한 '청불' 등급 규정만으로 그들을 보호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징어 게임의 영상물 등급 제도와 동일한 청불 등급의 콘텐츠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행하게 됐을 때, 만일 미성년자가 청불 콘텐츠를 시청했다면 과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아이의 행동을 제재하지 못한 보호자, 나아가 OTT 밖으로 청불 콘텐츠를 끌고 나온 제3자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놀이'를 콘텐츠 소재로 사용할 때도 책임이 따르나요?

(사진=경기 지역 한 맘카페에 올라온 글 갈무리)
(사진=경기 지역 한 맘카페에 올라온 글 갈무리)

오징어 게임을 보고 옛 기억을 떠올리는 어른들이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를 비롯한 추억의 놀이는 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오징어 게임 속 놀이를 패러디해 즐길 수 있는 여러 이벤트도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강릉의 모 호텔은 상금 500만원을 걸고 참가자를 모집했으며, 접수가 사전에 마감되기도 했다.

위의 사진은 경기도 시흥 지역 한 맘카페에 올라온 글의 본문이다. 학부모들이 전달받은 공지에는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의 영향을 받아 변질된 방식으로 게임을 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히며, 학부모에게 지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오징어 게임 시즌 1 예고편 장면 캡처)
(사진=오징어 게임 시즌 1 예고편 장면 캡처)

놀이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현재' 향유하는 문화다. 어른에게 있어 놀이는 일상의 지루함을 떨칠 수 있게 하는, 다시 한 번 더 경험하고 싶은 추억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매일의 일상은 '놀이' 그 자체다. 학교는 물론 학원, 놀이터와 같이 아이들이 주인인 공간에서 오징어 게임 속 인물을 스스로에게 투영해 게임을 하며 서로 폭력 행위를 가하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를 콘텐츠로 썼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어른들도 결국 그런 놀이를 하며 성장했음을 강조하는 의견이 맞붙는다. 법적 소유권처럼 자로 잰 듯이 놀이에 대한 권리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콘텐츠 제작자에게 규제를 가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제재와 부모의 관리만을 통해 유해 매체 노출을 차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규제의 대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책임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사안에는 그에 따른 합당한 신중함과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제재하는 것이 곧 '왕따'?

(사진=롯데리아 공식 홈페이지)
(사진=롯데리아 공식 홈페이지)

비단 SNS상에서만 오징어 게임 유행이 번진 것은 아니다.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해 회차를 구성하고, 드라마의 OST를 장면 곳곳에 삽입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를 더했다. 또 마케팅 업계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스토리, 등장인물, 소품과 의상 등을 차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롯데리아는 '오징어'를 중점으로 두고 신메뉴 오징어 버거를 출시해 오징어 게임의 타이포그래피와 유사하게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 자체를 아예 모르기란 어렵다. 설령 원작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위와 같은 연령 제한이 없는 수단과 경로를 통해 내용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를 틀었을 때나 가게 앞을 지나갈 때 보이는 것들에 하나같이 같은 도형들, 진한 분홍색의 실험복을 입은 사람과 초록색 체육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기에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이렇게 유행하는 콘텐츠로부터 아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곧 그들을 왕따시키는 것과도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내용과 연출이 유해하다는 이유로 알 권리를 막는 것은 부당함을 내세우는 의견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누군가는 우리 아이들도 이 사회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극 속에서는 저마다 불가피한 사정이 존재하는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오로지 금전을 목적으로 게임에 참여해 죽고 죽이는 소재의 드라마가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아직 세상을 알기에는 어리다고 생각되는 나이의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청불 콘텐츠에 노출되고, 또 어른이 주체가 되어 아이들이 그러한 콘텐츠에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는 것만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방에 도배된 채 유행하는 콘텐츠를 무작정 가리고 숨기는 방법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유해한 부분을 걸러내어 어떻게 연령대에 맞춰 설명하고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어른들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사진=넷플릭스 코리아)
(사진=넷플릭스 코리아)

이제 유행하는 콘텐츠 뒤에 숨겨진 이면에 대해 재고할 시점이다. 콘텐츠의 흥행을 당연시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끼치는 파급력을 재고하고, 만일 그 콘텐츠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라면 한 사회는 물론 그 사회의 구성원인 아이들에게까지 미치는 영향력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보가 구시대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은,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 바른 가치관을 지닌 아이들을 길러낼 준비가 된 책임감 있는 건강한 한국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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