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던 더위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이것이 가을의 시작인지, 아니면 더 강한 재앙을 위한 폭염의 숨 고르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들이를 하러 가려면 바로 이때가 적기라는 것. 아무리 더위에 안에서 쉬는 호텔 바캉스가 유행이라지만 그래도 바깥 구경 한 번 안 하고 여름을 지내긴 아쉽지 않은가? 특별한 이야기가 어린 곳, 특별한 추억이 준비된 곳, 특별한 곳을 볼 수 있는 키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공간 업사이클링이다.

핀란드의 카타야노카 호텔. 감옥이었언 이곳을 호텔로 바꾸었다. 사진 제공, 조선 일보

 ‘새 활용’이란 예쁜 우리말로도 쓸 수 있는 업사이클링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Recycling)의 합성어로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디자인 등을 가미하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4년 라이너 필츠(Reiner Pilz)가 신문사 인터뷰 과정에서 ‘낡고 오래된 제품에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업사이클링을 언급한 것이 시초다. 업사이클링은 디자인적 요소가 중요시되는 의류나 잡화, 가구, 생활용품 등의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였고, 최근에는 건축물, 도시로까지 그 개념을 확장했다.

 공간 업사이클링은 1990년대부터 버려진 건축물의 새로운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점차 여러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버려진 탄광 지역을 문화, 레저시설로 활용한 독일의 졸페라인, 고가철도를 철거하는 대신공원으로 조성한 뉴욕의 하이라인 등이 있다. 그렇다면 국내는 어떨까. 국내의 다양한 공간 업사이클링을 소개한다.

포천 아트밸리

포천 아트밸리의 대표적인 명물인 천주호. 제1급수로 지정되어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으며, 민간인의 입수는 금지되어 있다.

 포천에서 생산된 화강암인 포천석은 재질이 단단하고 화강암 고유무늬가 아름다워 국내 건축물의 건축자재로 두루 쓰였다. 청와대, 국회의사당, 대법원, 경찰청, 청계천 복원 사업에도 포천 화강암은 많이 쓰였다. 그러나 채석이 끝난 후 포천의 산은 잘려나가 폐허가 되었고 폐석장의 흉물스러운 경관은 포천 도시의 이미지를 저해했다. 포천시에서는 2003년부터 버려져 방치되어 있었던 폐채석장을 업사이클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화강암을 채석하며 파 들어갔던 웅덩이에 샘물과 우수가 유입되어 호수인 청주호, 폐채석장을 새롭게 활용하여 화강암 돌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돌 문화전시관, 화강암 채석으로 절단되었던 화강암 직벽을 활용해 미디어파사드 영상 상영과 소리 울림 현상을 활용해 독특한 공연을 가능케 한 호수공연장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포천아트밸리는 ‘푸른 바다의 전설’,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화유기’ 등 다수의 드라마 촬영장소로 이용되는 등 인기 관광 장소가 되었고, 포천아트벨리가 경기도 10대 유망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포천 아트벨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각종 창작체험 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천문과학문화관도 설립하는 등 공간, 콘텐츠의 지속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팔복예술공장

 전주 팔복동에 위치한 1979년 쏘렉스 공장은 카세트테이프가 대중화되기 시작할 때에 설립되어 아시아 곳곳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제작, 수출해 호황기를 누렸으나, CD 시장이 성장하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소렉스 공장이 떠난 후 이곳은 25년 동안 폐허로 존재해 오고 있었다. 2016년 4월경, 팔복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사업 추진계획을 시작하였고 새로운 예술적 삶을 발현하는 문화플랫폼이 된다. 이젠 이곳에서 젊은 작가들이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시민과 관광객에게 예술 교육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와 행사도 열리고 있다. 전주시는 올해 3월 말 문을 연 팔복예술공장에 약 5개월 만인 현재까지 3만1000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고 16일 밝혔다. 시는 이 같은 성과를 발판 삼아 국비 10억 원 등 총 20억 원을 투입해 실내 예술교육공간과 실외 예술놀이터, 예술융합공간, 어린이놀이책방 등을 갖춘 팔복예술공장 2단지 문화예술교육센터 조성을 추진 중이다. 폐공장을 재생해 만든 이 예술공장이 그간 한옥마을 위주로 된 전주의 관광 지형을 북부권으로 넓히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도 보인다.

문화비축기지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 매봉산에 둘러싸인 ‘문화비축기지’는 그 원형은 마포 석유비축기지였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 이후 서울시는 민생안정과 2차 석유파동 대응책으로 마포구 매봉산 자택에 이 기지를 조성했다. 그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되었는데, 10년 넘게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다가 지난 2013년 시민 아이디어공모를 통해 문화비축기지로의 변신을 결정했다. 그 뒤 3년간의 공사를 거쳐 2017년 복한 문화 공간문화비축기지로 정식 개원했다. 개원 후 3개월여 기간 동안, 18만 명의 시민들이 문화비축기지와 함께했다.

파빌리온이라 불리는 이 공간은 탱크를 해체한 후 남은 콘크리트 옹벽을 이용하여 유리 구조물인 벽체와 지붕이 신설된 건축물로, 암반 지형과 건축물이 조화되어 극적인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문화비축기지에서는 단순히 공간을 새로이 활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열린다. 지난 17일 금요일부터 19일 일요일까지 탱크 상자 산속 영화관, 서울 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 출몰, 피어나는 몸 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문화비축기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커뮤니티 센터는 탱크를 해체한 후 남은 콘크리트 옹벽을 이용하여 유리 구조물인 벽체와 지붕이 신설된 건축물로, 암반 지형과 건축물이 조화되어 극적인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폭염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공공부문에 관해 재활용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선유도 공원,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는 서울로 7017시설 등이 그렇다.

 도시의 외연적인 팽창이 불가능하고 새로운 사업이 개발되기가 어려운 현시점에서는 도시 재생이 도시 정책의 중요한 쟁점이 되었고 따라서 공간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정부는 아예 국정과제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신 중이며 기존의 철거방식보다는 보존과 쇠퇴한 도시기능의 회복,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방향 점으로 잡았다.

 확실히 도시 재생은 자원을 다시 활용한다는 점에서 재원을 아낄 수도 있고 공간의 고유한 정체성을 이용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탄생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너무 정부 주도로 공간 업사이클링이 진행되다 보니 정작 그 공간을 활용할 사람들이나, 그 주위의 사는 주민들의 의견이나 이익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서울로 7017시설은 2018년 5월 20일 개장 1주년을 맞을 즈음 누적 방문객이 1000만 명을 돌파했으며 남대문시장 방문객은 20% 정도 증가하는 등의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시설이 교통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 개장 이후 남대문 시장 쪽의 상권만 더 활성화됐을 뿐 서울역 역사 서쪽의 상권 부흥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 설치된 예술 작품인 '슈즈 트리' 가 흉물 등의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자칫 도시재생사업이 시장이나 높으신 분의 ‘업적 쌓기’에 치중할 뿐, 세금 낭비와 더불어 도시재생의 긍정적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전민일보에서는 팔복예술공장에 대해 ‘문화공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런 볼거리가 없어서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커피숍이나 운영하려고 50억 원이나 들였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실으며 우려를 표했다.

 KB 지식 비타민에 따르면, 공간 업사이클링의 성공에 관하여 디자인,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요소를 꼽고 있다. 기존의 건축물 원형을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하고,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 사업추진과정 등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광객의 흥미를 자극하고, 또 개성 있는 공간으로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관련 콘텐츠를 지속해서 발굴해내야 한다. 낙후된 도시를 살리면서도, 관광객과 주민들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도시재생 전략을 위해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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