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는 전 세계를 유혹했다?

향신료가 전 세계에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 역사를 알면 된다!

밋밋한 음식에 색다른 맛을 살려주는 향신료. 현재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구하기 매우 힘들었다. 향신료를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와 권력을 상징했을 뿐만 아니라 향신료 하나 때문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나서도록 만든 촉매제 역할까지 했다. 과연, 향신료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향신료하면 종류는 많다. 후추, 파, 마늘, 생강, 겨자, 카레 등 음식에 풍미를 주어 식욕을 촉진시키는 식물성 물질로 정의한다. 하지만, 향신료의 과거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 중에서 후추가 매우 귀중하고 구하기가 힘들어 많은 유럽 귀족들에게는 소유 자체만으로도 부와 권력을 상징했다. 후추는 코 끝을 톡 쏘는 알싸한 향기와 혀를 아리게 하는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이다. 동서양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기본양념이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향신료인데 주로 고기/생선 냄새를 없애는데 사용이 되었고, 살균효과가 굉장해 가공식품에도 쓰였다. 특히나 입맛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식욕을 돋아주기도 했다. 후추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13만톤을 생산되고 있는데 전체 생산량의 1/4을 차지해 “향신료계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향신료 하면 제가 먼저 아닐까요? - 후추”

향신료 하면 먼저 나오는 후추!

1세기, 아시아 및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서 지중해로 수입되는 물품의 반 이상은 향신료였고 대부분은 인도에서 들여온 후추였다. 아직까지 냉장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부패성이 강한 음식을 오랫동안 보존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로마시대 때 상한 냄새와 맛을 감추기 위해 후추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중세시대 때부터 향신료 시장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진다. 베네치아 인근에 개펄사업을 실시했는데 그곳에서 생산된 소금을 시장에 내놓아 뚜렷한 경제 성장을 이룬다. 베네치아의 소금과 인도의 후추 간의 무역이 활성화 되다 보니 베네치아는 유럽권과 일부 아시아권 사이로 인기가 커졌고, 전쟁이 없는 평화상태 보장을 받게 된다. <베네치아의 상인>에서 나온 희곡을 보면 베네치아 상인들은 200년 간 치러진 십자군 원정을 지원하며 세계 향신료 시장을 장악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향신료 무역에 대한 베네치아 상인들의 독점이 계속되자 중세 유럽 국가들은 독자적으로 향신료를 구할 수 있는 바닷길을 찾기로 했다. 11세기 중반, 포르투갈 주앙 1세의 아들이자 항해가인 엔히크 왕자는 상선을 만들고 대규모 선단을 조직했는데 이때부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다.

200년간 십자군 원정대를 지원한 베네치아 상인들, 향신료 무역로를 독점할 정도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이때부터 일부 유럽권들 사이로 향신료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는 후추 생산국으로 유명했다. 15세기 중반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의 캘리컷 지역을 점령하고, 식민지를 세워 후추 무역권을 얻게 된다. 1492년 10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을 설득해 인도를 찾아 서쪽 항로를 개척하는 탐험길에 오르게 된다. 그가 간 곳이 인도라고 확신을 했지만 사실은 <아메리카대륙>이다. 후추는 없었고, 대신 금이 많았다. 이곳을 <서인도제도>라 불렀고, 이 섬에서 사는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명명했다. 후추를 발견하지 못한 콜럼버스는 대신, 무력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해 금을 휩 쓸었고, 노예로 삼는 등 아메리카 역사 상 가장 치욕적인 역사로 자리잡는다. 두 번째 항해를 통해 서인도제도 아이티에서 고추를 발견한다.

한국에서도 후추와 관련된 사례가 있었으니, 유성룡에게 물어보면 된다!

한편, 한국 역사를 보면, 후추를 적극적으로 구하기 위해 노력이 많은 왕이 있다. 바로, 조선시대 성종이다. 조선은 일본 상으로부터 후추를 수입하고 있었는데 1482년 성종은 후추 씨앗을 구하라고 명을 내린다. 본격적인 경작으로 쌓여가는 과도한 물량으로 일본에서는 후추를 빼앗아가기도 했는데, 성종이 후추를 구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미 중국에서 후추를 대거 중개무역을 통해 이익을 내고 싶어서였다. 그 정도로 교역 이익이 컸던 상품이다.

또 다른 사례로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는 후추와 관련된 일화가 적혀있는데 당시에만 해도 워낙 값비싸고 귀한 물건이기 때문이 이런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일본 사신 다치바나야스히로이란 자가 조선에 오자, 예조판서가 그를 맞이해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그는 후추를 한 주먹을 꺼내서 자리에 뿌렸다. 그러자 기생, 악사들이 달려들어 후추를 줍느라고 잔칫상이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야스히로는 이를 보고 아랫사람들의 기강이 이 모양이니 조선은 곧 망할 것이라고 했다.

“후추보다 더 매운 향신료가 등장했다. - 고추”

고추보다 이전에 나온 향신료가 있었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 향신료는 바로 고추이다. 아메리카대륙 에서만 나는 이 향신료는 후추보다 더 매운데 처음부터 매운 맛이 바로 나와 다 먹고 나면, 기분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어 그에게는 후추를 뛰어넘을 획기적인 향신료였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크게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 사람들의 입맛과 음식문화에 맞지 않은 것이다. 대신 아시아권에서는 환영을 받은 향신료이다. 1592년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이 쓴 <도문대작>을 보면 아메리카에서 발견 된 이후 약 100년 만에 조선에 전해진 향신료라 기록되어 있다. 고추는 온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특성 탓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특히 1700년 무렵 김치에 넣어 사용되면서 소비량이 급증했다. 겨울에 야채를 먹기 위해 담가먹기 시작한 김치는 소금을 넣어 짜게 절여야 오래 보존할 수 있지만, 쓴 맛이 나기 때문에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젓갈과 고추가루를 넣어 맛을 해결한 바 있다. 사실상, 고추 이전에 나온 매운 맛인 초피라는 향신료가 있다. 아시아권에서 유행했던 초피는 후추와 비슷한 존재였는데 2m 정도의 키 큰 낙엽수로 9월에 열매가 익는데 그 열매에서 종자를 빼낸 과피가 향신료로 쓰인다. 하지만, 초피는 대량생산하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씻어 말려 가루로 빻아야 되는 과정에 있어 소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초피를 대신해 매운맛을 내는 대표 향신료로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나도 잊지 말아주세요! - 육두구”

 

현대는 자주 쓰이지 않는 향신료가 있다

17세기 유럽 요리에 자주 등장한 육두구는 오늘날 거의 쓰이지 않는 생소한 향신료이다. 육두구는 반다 제도 안에 작은 섬(테르나테 섬, 티도레 섬)에서 나는 아주 희귀한 향신료 였는데 몰루카 제도 주민들은 육두구를 재배해 이곳을 방문하는 아랍, 말레이, 중국상인들에게 판매했고, 다시 아시아 유럽으로 전파를 하게 된다. 다른 향신료에 비해 유통단계만 12단계를 거치는 복잡한 절차로 인해 사실상 그 가격은 어마어마했다는 점이다.

15세기때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육두구 생산지인 말라카 반다 섬에 도착하여 유럽으로 직접 수입하기 시작했지만 17세기부터 네덜란드가 육두구를 독점적으로 무역을 하게 되면서 종자 반출을 금지시켜 유럽시장에서는 육두구가 가장 비싼 향신료로 거래된다. 당시 네덜란드는 반다제도와 육두구 교역을 독점하는 불합리한 조약을 체결하고 조약을 내세워 온갖 횡포를 부렸다. 육두구 교역의 독점권만이 조국을 지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반디 섬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팔려가는 등 다시 한번 식민지화가 등장하게 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육두구가 조선시대 때 까지 사용한 흔적이 있다. 주로 강장제와 생선요리의 소스로 사용되었는데 1401년 명나라는 조선 말과 바꾸기 위해 면포, 모시, 명주실과 같은 비단류와 함께 육두구, 정향, 양강인 향신료를 보내온 바 있다. 또한 1483년 일본과 자주 교역이 많았던 한국은 육두구를 귀하게 운송한 사실이 있다. 하지만, 육두구는 간접 무역을 통해 들여온 향신료 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급이 될 수 없어 아쉽게도 현재는 사라진 향신료이다.

도대체 왜 전 세계가 향신료를 무리하면서까지 구입했는지 살펴보면, 먼저 그 시대 때는 음식 맛이 없었다. 돼지고기나 생선은 특히나 향신료가 없으면 먹기가 어려울 정도로 맛이 밋밋했다. 또한, 냉장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여서 부패성이 강한 식품은 무역거래가 어려웠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존을 해야 할 소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어떠한 병이 걸렸을 경우 그 냄새가 심했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후추를 태워 소독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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