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8.5.25 금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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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게이머가 만드는 문화생산 장려하면서 소비는 억제…자연스럽게 '길'이 된다

   

게임문화는 게임과 사회가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다. 산업 혹은 정책적인 입장에서는 게임문화를 통해 게임이 사회 안에서 활발하고 안정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문화는 어떤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기 보다는 자연스레 만들어져가는 것이다. 여느 문화가 그러하듯 게임문화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그리고 여러 요인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게임문화는 어떨까. 한국사회가 그다지 게임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마냥 긍정적인 기대만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는 여전히 게임을 온전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높은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산업적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게임이 사람들의 일상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게임의 의미를 문화예술적인 상품으로 한정하더라도 더 좋은 상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할 텐데, 생산은 장려하되 소비는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게임 셧다운제를 비롯한 일련의 규제정책들은 이러한 괴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게임이 사람들에게 일상이자 문화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인지하고, 게임이 효과적으로 일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시점에 도리어 개인이 일상 속에서 게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적인 강제를 취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게임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게임 리터러시'를 중심으로 게임과 일상의 조화에 주목하는 대안들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시기 면에선 여전히 아쉽다.

그런데 이러한 점들이 기실 게임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둘러싼 여러 환경과 조건들이 달라져오는 동안 게임이 사람들의 일상에 꾸준히 자리해왔으며, 그러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 게임문화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게임에 관한 산업과 정책적 흐름들이 게임문화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긴 했겠지만 게임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삶에 구체적인 관계를 맺어온 과정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 과정은 현대사회에 등장한 게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현대인들에게 수용되어온-거스를 수 없는-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게임문화를 관찰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게이머를 살펴보는 것이다. 게이머는 게임하는 사람인 동시에 사회구성원이기도 하다. 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과정은 게이머 본인의 삶과 분리될 수 없고, 그러한 삶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 여러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게임은 더 이상 특정한 세대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폭넓은 세대가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이 적지 않은 시간동안 이어져왔다는 것을 뜻한다. 시간은 경험과도 연결된다. 게임의 시간이 오래된 만큼 게임에 대한 경험을 축적한 세대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환경들은 다양한 취향과 관점의 게임문화가 발현되는 토대가 된다.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일상과 삶에서 게임과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방식들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그 관계를 맺어가는 핵심적인 동력은 공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근로시간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나타내는 여러 사회지표들은 한국사회에서 게임을 여유 있게 즐기는 것이 힘들 것임을 자연스레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게이머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게이머들은 다른 게이머들과 함께 게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거나, 게이머들끼리 자발적으로 게임과 관련된 행사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즐긴다. '레트로 게임 장터'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는 이 행사는 꾸준히 지속되어 어느덧 12회째를 맞이했다. 행사가 지속되는 동안 행사에 대한 관심과 규모도 그만큼 성장해왔다. 행사운영을 위한 지원을 받긴 하지만 주최 측은 최소한의 지원만을 받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시간과 비용을 할애해가며 레트로 게임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게이머들이 모이는 즐거운 자리를 만든다는 행사의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 역시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게임문화는 게임 산업과 정책에 게이머들의 게임에 대한 애정을 존중하고, 그 애정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길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방해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셈이다.

그동안의 규제정책들이 발걸음 자체를 막아왔다고 해서 앞으로 큰 길을 내려는 것이 필요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게이머들이 내딛는 발걸음이지 길이 아니다. 게이머들이 내딛는 발걸음이 만드는 궤적이 길 자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지웅 게임평론가 iamwoon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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