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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 원양어선 1척으로 개척정신을 보여주다.동원그룹 설립자 김재철, 참치 통조림 하나로 그의 일대기를 담다

원양어선에서 오늘날의 동원그룹까지 새로운 개척을 하게 된 김재철 회장 * 사진출처 : 한경

1957년 6월 29일 어선 지남호가 부산항 제 2부두를 빠져나간다. 우리나라 최초 원양산업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지탱해준 유일한 사업이였다. 우리나라에서 참치를 잡아온 것은 “애국”이라 불릴 정도로 19세기 중반에 참치가 인기 교역물품이였다. 원양어선 사업이 유행으로 번지자 너도나도 배를 타게 된다. 그 중에서 동원그룹 회장 ‘김재철’이 처음 참치를 잡고, 지금의 동원그룹 설립과 수산업을 발전시키기 까지 배 한척으로 이룬 그의 포부와 꿈은 크기만 하다.

김재철이 탄 배 “지남호”. 지남호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남쪽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지어주면서 부산항에 뱃고동소리가 울러퍼졌다. 이 뱃고동 소리는 한국의 첫 원양어업을 알리는 소리였다. 사실 아시아권에서 한국은 원양어업에서 낙후된 나라이다. 사실상, 지남호도 미국에서 원조를 받은 선박이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부산항에서 지남호가 최초로 원양어선을 시작하였다. * 사진출처 : 유투브

그 어느 누구도 성공한다라고 장담을 못한 상황 속에 새로운 개척을 꿈꿔왔던 김재철은 무턱대고,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원양어선에 타 “저도 지남호에 태워주십시오. 월급 안 받겠습니다. 항해해 중에 책임은 묻지 않겠다.”라는 한마디와 서약서를 남기고, 실습을 자처했다. 당시 수산업으로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던 그는 안정된 직업을 버린 채, 사나운 파도에 몸을 맡기고 원양어선을 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연간 1인 GDP 백달러도 채 되지 않았는데 김재철은 단지, 자기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에 신경 써 참치를 무조건 잡아와 외화 소득을 벌어보자라는 당찬 포부로 어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지남호는 우리나라 최초로 가보지 못한 적도 남단을 통해 사모아라는 지역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사모아라는 지역은 미국령으로, 전체 차미 어획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황금알을 낳는 어장이였다. 안타깝게도 지남호에 탄 선원 중에서 원양어선을 경험한 사람들이 없었으며 참치라는 생선을 구경 조차 해본 사람도 없었기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또한, 사모아 주위를 돌고 있던 일본 원양어선의 텃세도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져갔다.

하지만, 김재철은 포기하지 않고 선원들과의 노력을 통해 조업한지 15일 만에 10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어획고를 올릴 수 있었다. 지남호의 첫 성공적인 어획은 대한민국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김재철은 외국의 어류도감을 빌려다가 주경야독을 하며 수많은 어획고의 물고기 속에서 외화소득이 될만한 물고기 종을 익혀갔다. 거기에 매일같이 일어나는 배의 사건과 사고. 안전에 대해서 분석함으로써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1년 3개월 만에 100톤이 넘어가는 참치를 잡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소문이 퍼져 첫 수출산업으로 되었으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사모아를 직접 찾아가 원양어선을 타고 있는 선원들에게 격려를 하기도 했다.

미국의 사모아라는 지역에 지어진 40% 참치캔수출로 유명한 기업, 스타키스트 * 출처 : 구글

1960년대부터 정부의 수산업 지능정책에 힘입어 수산업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전체 수출의 5%를 차지할만큼 큰 규모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원양어선이 나날히 성장하자 김재철은 지남호의 제 2의 선장이 되었다. 27살의 나이로 그가 빠른 선장이 되었던 것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의 영향력이 국가에서 큰 발전을 이뤘기에 원양업계의 캡틴으로 불렸다. 심지어는 사모아에서도 김재철의 타이틀은 유명세를 떨쳤다. 1963년 사모아에서는 미국의 세계최고 참치 브랜드인 세계 참치 가공 1위 기업 “스타키스트”라는 공장이 세워지게 되었다.

아시아권에서는 참치가 유명한 생선이였지만, 서구권에서는 이미 참치를 통조림화 시켜 대중화시키고 있었던 것이였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은 참치 수요량이 증가해 많이 잡아오기만 하면 좋은 수출여건이 되었을뿐더러 경제성장이 고도로 증가해 이색적인 먹거리가 넘쳐나 그 당시 회전초밥이 유행이였다. 참치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어종으로 생선으로 팔기 위해서 신선도 유지는 필수 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재철은 자본금 1000만원을 가지고, 직원 7명과 함께 동원산업을 창업하게 되었다. 총 37만 달러라는 돈을 빌려 냉동어선으로 바꾸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가격 결정력 때문에 의존해서 수출하다가는 손해가 되기 쉬웠기에 쉽지는 않았다. 김재철은 일본에서 납품을 한다기 보다 미국이나 유럽쪽으로 시선을 돌려 특히 “스타키스트”에 주목을 하였다. 참치를 통조림화 시켜 납품하려 했지만, 부족한 기술력 때문에 서구권에서 정한 염분 한도 때문에 반품이 되어버렸고, 당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어 식생활 패턴도 점차 변화하고 있어 이 통조림을 한국에 최초로 납품하게 된다.

2007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사업에 집중하고자 스타키스트를 버리게 된다. * 사진출처 : 델몬트 공식홈페이지

1982년부터 본격적인 참치 통조림을 출시한 동원산업. 여기서부터 승부수를 걸게 된다. 한국은, 참치라는 존재가 생소하고, 부담되는 가격에, 좋은 식감이 아니였으나 이것을 역이용하여 가격에 초첨을 맞춰 명절선물세트로 만들자 그 인기는 폭팔했다.

2007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생기게 되자 야채, 과일 통조림 산업으로 유명한 델몬트는 스타키스트를 만든 모기업이였는데 위기에 빠져 기존의 사업을 집중하고자 수산업을 완전히 정리하게 된다. 이때 김재철은 원양어선을 타고 납품을 했던 당시의 인연을 살려 2008년 스타키스트를 인수하게 되었고, 1년 6개월만에 흑자로 돌려놓게 되었다. 그 후 스타키스트는 동원그룹의 최고 수익을 내는 효자기업이 되었고, 오늘날의 “바다로 미래로”라는 슬로건 아래 동원그룹이 우뚝 서있다.

유재호 기자  gaia9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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