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지(P&G)는 오랄비, 위스퍼, 팬틴, 헤드&숄더 등 우리 생활에 친숙한 브랜드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이다. 그 곳에서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20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한 ‘직장인 신화’가 탄생했다. 화장품 SK-Ⅱ와 면도기 질레트, 탈취제 페브리즈 등을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김주연 사장이 그 인물이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당초 학자가 될 생각이었다. 지구에 굶주리는 사람을 없애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석사과정을 마칠 무렵 인생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결국 그는 박사 과정 1년 미루고 직장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첫 직장은 제약회사였다. 하지만 생물학을 전공한 그에게 회사는 마케팅 업무를 맡겼다. 3년간 좌충우돌하면서 마케팅 업무가 손에 익을 무렵,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간신히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사정이 되었을 때, 신문에서 리서치 직원을 모집한다는 P&G의 공고가 눈에 띄었다. 대학에서 배운 통계 및 전 직장에서 익힌 마케팅 지식이 두루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 지원했다.

그는 결국 리서치에 베이스를 둔 마케팅 방식으로 시장 조사단에서 잇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201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P&G 글로벌 브랜드 프랜차이즈 리더로 발탁돼 아시아, 중동, 남미, 동유럽 시장을 관장했다.

사장이 되고 난 후, 김 사장은 사무 공간을 전면 개편했다. 직원들의 협업 공간을 확대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개방형 ‘오픈 콜라보레이션 공간’, 개인 공간으로 나뉘어 있지만 협업이 가능한 ‘부서간 협업 공간’, 방해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개인업무 집중 공간’ 등 다양한 공간을 구현했다. 서서 회의할 수 있는 스탠딩 미팅룸도 새로 마련했다. 사무실 개조 후 ‘사무공간 내 업무 만족도’는 25% 증가했으며, 사무공간 내 협업에 대한 만족도도 15%나 올랐다. 실제 많은 직원들이 사무공간의 혁신으로 업무집중력과 소통,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특히 업무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업무 협업이 가능한 구조라는 점을 만족도를 높이는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2015년 발표된 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는 양성평등(Gender Equality)에 대한 캠페인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과 소녀들이 직면한 차별과 더불어 차별적 관행 폐지, 가사노동에 대한 양성 평등한 인식, 여성의 경제권과 역량 강화 등이 그 내용이다. P&G는 기업 및 브랜드의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양성평등 메시지를 확산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인 SK-II는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을 응원하는 ‘체인지 데스티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 철학을 확산시키기 위해 한국P&G는 여성이 출생부터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치며 나이에 관한 사회적 편견과 압박을 경험하는 모습을 담은 ‘The Expiry Date’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여성들은 팔목에 출생 날짜가 마치 ‘유통기한’처럼 낙인 찍힌 모습으로 등장해 사회가 여성의 나이에 대해 암묵적인 ‘유통기한’을 정해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한국 P&G는 국내에서 코미디언 박나래, 배우 이시영, 모델 이소라,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등 셀럽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 누구도 나이로 여성을 재단하고 평가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피앤지 생리대 브랜드인 위스퍼(Whisper)는 50%의 여자 어린이들이 사춘기, 특히 초경을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크게 잃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여자답게’라는 표현이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의미해, 여자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와 같은 편견을 깨고자 시작한 캠페인이 ‘여자답게’다. ‘여자답게’라는 표현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일 수 있다는 접근이었다. 결국 ‘여자답게’라는 말에 갇히지 말고 ‘나답게’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P&G는 브랜드뿐만 아니라 기업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성평등 메시지를 소구해 왔다. 지난 3월 ‘We See Equal’ 캠페인 영상을 통해서는 ‘공평한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며 가정, 직장, 학교 등 생활 곳곳에서 여성 그리고 남성의 역할에 대한 선입견을 깨자는 메시지를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이 영상에서 P&G는 ‘수학 방정식은 문제 푸는 사람이 누군지 상관하지 않아요’, ‘기저귀는 누가 기저귀를 갈아 주든 상관하지 않아요’와 같이 사물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본다. 성별에 대해 차별을 갖는 것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활 속 장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정해진 역할이란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명제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김주연 사장의 대표의 대처방식은 위기에도 빛을 발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용품에 대한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커졌을 때, 페브리즈가 도마에 올랐다. 스프레이 형태의 페브리즈는 분무기 버튼을 당기면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이 물방울에 들어있는 성분의 안전성 논란이었다. P&G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단을 공장으로 직접 초대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R&D연구소, 실험 결과뿐만 아니라 실험 과정까지도 공개했다. P&G는 이어 미 환경보호국(EPA)으로부터 승인받은 독성실험 연구 자료까지 취재진에 공개했다. 이 자료는 우리 환경부에도 제출됐다. 제품 안전은 178년 동안 절대 타협하지 않은 회사의 철학이라며, 국내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후 페브리즈 성분 모두를 공개하고, 정부의 조사에 관련 연구자료를 제출하는 등 적극 협조했다. P&G는 이번에 국내 다른 기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제품 안전과 정보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열린 토론을 돌파구로 두었고, 페브리즈는 아직도 탈취제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일본 방사능 사태로 SK-Ⅱ의 실적이 부진할 때 김 사장은 ‘체인지 데스티니’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았고, 페브리즈가 위험에 처했을 땐 본사와의 협업과 전래없는 공정, 실험 과정 공개로 위기를 헤쳐 나갔다. 비전공자가 마케팅에 뛰어 들고,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그 과정에서 ‘유리 천장’마저 깨버린 김주연 사장의 마케팅 활약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소비자평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