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가치에 공감하고 높은 충성을 보이는 ‘팬슈머’

불합격한 취업준비생에게 작은 위로를 건낸 금호석화는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 사진 출처: 금호석화 공채 준비생
불합격한 취업준비생에게 작은 위로를 건낸 금호석화는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 사진 출처: 금호석화 공채 준비생

“저희 잘못입니다.” 2017년 금호석유화학이 신입사원 공채 서류전형 결과를 발표하며 불합격자에게 발송한 문자이다. 기대했던 합격 통보는 아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인원을 선발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격려를 받자, 사람들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쓰린 실패의 맛에 익숙해져 가던 취업준비생들에게 작은 배려는 특별히 다가왔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연일 칭찬의 글은 물론, ‘진정성이 느껴져 실력을 키워 꼭 입사하고 싶다’는 다짐도 쏟아졌다. 기업의 이미지 재고에 인격적 대우가 한 몫 했다. 실제로 취업 포털 잡코리아 설문 결과, 61.8%의 구직 경험자가 “탈락 통보를 받지 못해 기업에 부정적 인상을 갖게 됐다”고 답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꾸준한 진정성’으로 다가갈 때 튼튼한 지지층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한번 브랜드와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해 ‘팬덤’으로 성장한 고객은 상품의 생애주기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 애착 관계를 가진 브랜드의 기획, 유통, 홍보, 비판 등 전반적으로 관여한다.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 자발적으로 주위에 알리는 창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특히 디지털 발달과 맞물린 현대 세상에는 매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한다. 소비자의 취향 역시 세분화 되어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일방적인 정보를 전달해 구매를 유도하는 전략은 구시대의 것이 되었다. 이제는 브랜드와 잠재 고객이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정말 브랜드의 가치와 특질에 녹아들 ‘팬슈머(열정적 지지자를 뜻하는 fan과 소비자를 뜻하는 consumer의 조어)’를 발굴 및 육성하는 데 주목할 차례가 되었다. 몇몇 기업은 이른 시기부터 충성 팬을 만드는 작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 기업에, 그 팬: 배달의 민족

‘배민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 이른바 배짱이는 브랜드 팬덤의 대표 사례이다. 일반적인 SNS 홍보단과 서포터스 활동이 회사를 알리고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수를 받는 것과 달리, 배짱이는 스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움직인다. 이들의 시작은 단순했다. 배달의 민족에서 주최한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인증 샷을 올리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드러낸 사람들이 어우러져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다. 2016년 100여 명 회원으로 시작한 이래, 기수를 운영해 2기 250명, 3기 400명이 모집될 정도로 인기를 자랑했다. 결집할 수 있던 원동력은 당시 성장하고 있던 배달 문화의 주요 고객, 20-30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유쾌한 광고 카피와 신촌문예, 치믈리에 등 참신한 주제의 소비자 참여 프로그램 등 B급 감성을 앞세워 대중을 취향 저격했다고 볼 수 있다. 

배민 팬클럽 '배짱이' 3기를 위해 준비한 웰컴 패키지는 굿즈를 활용해 브랜드 충성심을 높인 사례로 볼 수 있다. / 출처: 배달의 민족
배민 팬클럽 '배짱이' 3기를 위해 준비한 웰컴 패키지는 굿즈를 활용해 브랜드 충성심을 높인 사례로 볼 수 있다. / 출처: 배달의 민족

배달의 민족은 팬클럽을 고객과 직접 만나는 소중한 기회로 삼았다. 이전 기수들이 입학시험을 주관해 팬을 뽑는 과정을 진행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함께 한 이들에게 한정판 웰컴 패키지를 증정했다. 또한, 굿즈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ㅋㅋㅋ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기획하며, 소속감을 느끼도록 했다. 덕분에 브랜드에 필요한 존재라고 인식한 소비자들은 함께 성장한다는 만족감과 더불어 자발적인 애정을 보이게 됐다. 일례로, 우아한형제들이 흑자 전환에 성공하자, 전국 팔도의 ‘흙’이 담긴 화분에 ‘자’를 꽂아 선물하며 기업 이미지에 걸맞은 축하를 건네기도 했다. 

 

팀장이 몰래 알려주는 제보스타그램: 오뚜기

오뚜기는 자사 로고와 유사한 숫자 8에서 차용해, 8888명만 팔로우 가능한 비밀 계정을 운영했다. / 출처: 인스타그램 캡쳐
오뚜기는 자사 로고와 유사한 숫자 8에서 차용해, 8888명만 팔로우 가능한 비밀 계정을 운영했다. / 출처: 인스타그램 캡쳐

한정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는 비공개 SNS 계정을 활용한 움직임도 있다. 착한 경영으로 소비자들 사이에 ‘갓뚜기’란 애칭을 받은 오뚜기이다. 오뚜기는 지난 2019년부터 인스타그램 ‘오뚜기해적선’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 평판이 좋은 만큼, 자사에 호의적인 고객층을 팬덤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팀장이 회사 몰래 알려주는 이야기를 컨셉으로 8,888명만 탑승 가능하다고 명시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해당 계정에서는 오뚜기를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먼저 신제품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담당자의 일상도 함께 공유하며 친밀감을 형성했다. 그 결과 견고해진 팬심을 바탕으로, 비밀 계정 밖에서도 자발적으로 미담과 함께 제품을 퍼트리는 바이럴 효과를 자연스레 자아냈다. 또한, 핵심 고객들의 진심어린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서도 톡톡한 역할을 해냈다. 팬슈머로서 그들의 취향이 제품에 반영돼 대중에게 다가가며 기업을 키운다는 자부심도 함께 자라났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한다! D2C 독립 선언: 나이키

세계 최대 규모의 유통 업체와 결별을 선언한 나이키, 그 목적은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는 데' 있었다. / 출처: 나이키(좌), 아마존(우)
세계 최대 규모의 유통 업체와 결별을 선언한 나이키, 그 목적은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는 데' 있었다. / 출처: 나이키(좌), 아마존(우)

나이키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을 박차고 나온 이유도 비슷하다. 2019년 11월 나이키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한다는 D2C(Direct to Customer)를 선언하며 아마존과의 연결 고리를 끊었다. 유통 전문가와 함께 한다면 매출이 보장 되겠지만, “소비자와 직접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거대 유통망을 등진 나이키의 선택은 신의 한 수로 평가 받는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20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9%, 영업이익은 30% 증가했다. 코로나 19로 오프라인 점포를 잇달아 폐쇄하며 2분기에 주춤한 모양새였지만, 40%를 차지하는 온라인 D2C가 성공을 거두며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기존에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이용자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고객의 경험을 장악하고 있었다. 제조업체였던 나이키는 브랜드와 소비자가 직접 교감하는 기회를 오로지 유통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소비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를 보였고, 실제로 나이키는 선언 이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유료 회원제로 개편하며 2억 50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모집했다. 또한, 자사몰을 활용한다면 일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정기적인 이벤트 및 회원 등급 별 혜택 등 차별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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