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비건인증원)
(사진=한국비건인증원)

소비를 통해 물질적 욕구를 채우기보다 가치와 신념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가치소비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가격이나 만족도를 세밀히 따져 소비하는 소비 성향이다. 이러한 가치소비를 하는 이들의 이목을 끄는 비건(Vegan)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GS25는 올해 1~7월까지의 비건 상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배, CU는 15배가량 상승했다고 밝혔다. 예전과 달리 다양한 비건 상품을 편의점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비건은 우리 일상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채식은 먹는 음식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락토 베지테리언, 오보 베지테리언,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페스코 베지테리언, 폴로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의 단계로 구분된다. 종류가 세부적인 만큼 섭취하지 않는 음식이 한 끗 차이로 달라지지만, 시중에서는 주로 비건 혹은 채식 같은 표현을 내세운 마케팅을 볼 수 있다. 겉보기에는 평소 먹던 음식과 다르지 않음에도 채식이 가능한 상품이라며 설파하는 마케팅 덕에 비건에 도전하기 어렵다는 기존 인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 비건이 지켜야 할 기준

한국비건인증원의 비건 인증 기준을 토대로 비건이 음식을 선택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동물 유래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둘째, 동물 비착취 식물성 원료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셋째, 동물성 원료의 교차오염 위험은 없는지가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 기준은 비건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알 수 있는 기준이나, 나머지 두 기준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무리 식물성 원료라도 동물을 착취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어 이를 주의해야 하며, 영업소가 비건 제품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면 논비건 제품으로부터 교차오염이 발생할 수 있어 이 점 또한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기준을 흩뜨리는 마케팅이 존재한다. 동물성 원료를 대체한 상품을 접하기 쉬워진 만큼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사진=도미노피자)
(사진=도미노피자)

◇ 비건은 못 먹는 식물성 미트 피자?

도미노피자는 지난 7월 16일 식물성 단백질 토핑을 올린 이른바 식물성 미트 피자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기존 육류 토핑을 식물성 단백질 토핑으로 대체해 비건 열풍에 탑승한 도미노피자의 기획 의도는 좋았으나, 일각에서는 해당 제품을 비건식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해당 메뉴 주문 시, 과채류를 제외한 다른 원료를 먹지 않는 비건식을 하기 위해서는 피자 치즈를 빼고 우유가 들어가지 않는 씬도우로 도우 변경을 해야 한다. 또한 얇아진 도우에 치즈 없이 조리되는지라 실제 굽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 동안 구워야만 타지 않은 온전한 비건 피자를 완성할 수 있다. 이처럼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메뉴의 마케팅이 비건이 아닌 사람, 즉 논비건의 비건식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결국 비건을 타겟팅한 메뉴는 아니게 된다.

더군다나 식물성 미트 피자는 기존에 있던 메뉴들을 대체육을 사용해 리뉴얼한 것으로, 비건이 아닌 사람은 호기심 혹은 비건에 대한 관심이 아니고서야 '굳이' 다른 이유로 이 메뉴를 택할 이유가 없다. 아예 새로운 메뉴를 내놓았더라면 그 고유의 맛을 선호하는 고객층이 생겼을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피자 업계에서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식물성 미트 피자의 파급력을 발할 대상을 명확히 정해 마케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CU)
(사진=CU)

◇ 채식은 비건식과 다르다

CU는 식물성 고기를 개발, 유통 및 판매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지구인컴퍼니와 협업해 대체육 '언리미트(UNLIMEAT)'를 사용한 채식주의 김밥과 도시락을 출시했다. 그중 하나인 언리미트 채식유부김밥은 제품명에 '채식'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지만, 달걀이 함유되어있어 비건은 먹지 못하는 채식 김밥이 되어버렸다. 채식, 이 두 글자를 내세운 마케팅은 비건이 단순히 제품명만 보고 해당 제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만든다.

'언리미트(UNLIMEAT)'의 인스타 공식계정 게시물에 홍보된 도미노피자의 식물성 미트 피자가 완벽한 비건식이 아님에 아쉬워하는 소비자의 댓글이 달렸다. 기업은 그 댓글에 해당 제품이 성공한다면 비건 메뉴도 나오지 않겠냐는 식의 대응을 했다. 기업이 오로지 비건만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는 것은 개발부터 시작해 비건 인증까지 금전, 시간, 그리고 노력 이 모든 요소를 투자해야 하는 생각보다도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기에, 비건이 먹지 못하는 제품이라면 채식을 내세운 마케팅을 일절 하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진=unsplash.com)
(사진=unsplash.com)

비건 시장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채식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만큼 비건들이 바라는 건 없다. 그러나 동물과 환경을 생각해 비건 또는 채식을 중점으로 한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면, 적어도 채식의 단계에 비건이 포함되어 있음을 명확히 숙지하고 표시할 필요가 있다. 비건에게는 어떤 제품이 어느 단계의 채식을 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지 명시한 표기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제품명을 오롯이 신뢰하지 못해 매번 영양 정보를 확인하고 고객센터에 문의하는 비건의 수고로움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논비건 역시 채식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채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비록 미흡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과거보다 활발해진 비건 상품의 등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는 앞으로도 비건 시장에 뛰어드는 여러 기업의 행보에 주목할 만하다. 비건 여부를 떠나 소비자의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칭찬과 냉철한 비판이 비건 업계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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