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이 기어이 재발했다. 백신 접종이란 말도 무색하게 들리고 델타변이 바이러스까지 등장하여 위기감을 조성하는 탓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끝은 보이지가 않는다. 언제까지 계속 될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는 한 걸까. 코로나의 극성은 계속되지만 더 이상 셧다운은 안된다는 인식이 파다하다. 어떻게든 경제고 생활이고 돌아가야 한다. 오프라인이 안 되면 온라인으로 가야 한다. 디지털이 메인 스트림이 되고 있다. 디지털로 인해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 지금의 변화를 표현하는 적절한 말로 ‘유니버스(Universe)’란 단어가 있다. 테크놀로지에서 출발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유니버스라는 세계를 지칭하는 표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공간’에서 ‘세계’로 확장되는 디지털

유니버스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메타버스(Metaverse)’가 화두이다. 메타버스는 가상 현실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활동까지 할 수 있는 3차원 디지털 공간을 말한다. 지금 유니버스란 개념이 뜨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오프라인의 물리적인 세계가 아닌 무형의 디지털 세계를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디지털 ‘공간’이 ‘세계’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기본적으로 땅과 하늘, 육지와 바다, 그 공간 위에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세우고, 물건을 만들고 사고 팔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만들었다. 디지털 세계는 어떠한가? 디지털은 땅과 하늘, 육지와 바다 같은 물리적인 구분이 없이 ‘네트워크’라는 연결구조로 이루어진 공간에 세워진 세상이다. 모든 것은 인간이 창조하기 나름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야 하는 공간이다.

 

디지털은 ‘기술’이 아닌 ‘생태계’의 눈으로 봐야

이는 유니버스란 개념에 ‘세계의 설계’라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함을 뜻한다. 세계를 만드는 일은 기업 입장에서는 무척 생소한 일이다. 아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기껏해야 제품을 만들고 포장해서 알리고,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씌워서 어필해 왔던 것이 전부이지 않은가.

 

과거에 디지털은 ‘온라인 사이트’였다. 오프라인에서 팔던 물건을 온라인에서도 팔기 위해 ‘커머스(commerce)’란 영토에서 출발했던 것이 초기 디지털의 쓰임이었다. 그러던 것이 24시간 모바일을 들고 다니면서 디지털은 그냥 우리들의 생활이 되었다. 구매도 생활의 일부인 만큼 하루를 생활하며, 먹고, 놀고, 즐기기 위해 우리는 항시 디지털에 로그온 되어 있는 상태이다.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는데 ‘세계관’은 좋은 도구

디지털에서 생활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생활의 공간은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다채로워지고 있다. 사이트 화면 위에 끝도 없이 제시되는 제품 목록과 어디보다 최저가인 가격 리스트만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하루 24시간이 매일매일 주어지는 만큼 소비자의 시선을 잡으려는 많은 플랫폼들과 콘텐츠들이 성역없는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간을 빌려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디지털 게임을 기획하듯, 마블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듯, ‘세계관’이라는 개념으로 디지털 공간을 입체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부캐의 스토리 뒤에는 맥락과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스토리가 씌워지면 소비자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관여도 깊어진다. 이것이 디지털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생존하는 방법이다.

유재석과 부캐들(좌: 브런치), 매드몬스터와 이호창(우: 디지털 인사이트) - 유재석은 MBC 예능 [놀면뭐하니?]에서 ‘유고스타’ ‘유산슬’ ‘라섹’ ‘유르페우스’ ‘유DJ뽕디스파뤼’ ‘닥터유’ 등의 다양한 부캐로 인기를 끌었으며, 개그맨 이창호는 전세계 60억 명의 팬을 보유한 2인조 보이그룹 ‘매드몬스터’와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이라는 진짜보다 더 리얼한 가상 캐릭터로 부캐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유재석과 부캐들(좌: 브런치), 매드몬스터와 이호창(우: 디지털 인사이트) - 유재석은 MBC 예능 [놀면뭐하니?]에서 ‘유고스타’ ‘유산슬’ ‘라섹’ ‘유르페우스’ ‘유DJ뽕디스파뤼’ ‘닥터유’ 등의 다양한 부캐로 인기를 끌었으며, 개그맨 이창호는 전세계 60억 명의 팬을 보유한 2인조 보이그룹 ‘매드몬스터’와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이라는 진짜보다 더 리얼한 가상 캐릭터로 부캐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부캐나 세계관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더욱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공간을 살아있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의 탄생 배경부터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을 ‘공간’으로 보는 것과 ‘세계’를 보는 것과의 차이는 이렇게 다르다. 그 동안 디지털에서 마케터들이 해온 일은 사이트를 구축하고, 제품을 진열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바이럴 시키고, 고객 데이터를 모으고, 적확한 타겟을 찾아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디지털을 오프라인 유통의 대체 공간으로 바라봤을 때의 접근이다. 하지만, 2021년도의 디지털은 제품이 아닌 소비자가 주인공이 되어서 일상을 콘텐츠로 남겨 공유하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이다. 이것이 디지털을 ‘오프라인을 떠난 우리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생태계’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디지털 생태계를 다루는 마케팅 전략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

디지털을 세계라는 시각으로 보고 마케팅을 진행하려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은 기업의 ‘제품’ 아닌 소비자의 ‘일상’을 다루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케터가 관심을 가져왔던 영역은 제품 구매를 둘러싼 전후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제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나 이벤트를 집행해 왔고, 매장에서 제품의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세일즈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리고 제품 판매 후에는 고객만족도를 통해 제품에 대한 불만이 없는지를 체크했다. 여기에 소비자가 제품을 사 들고 돌아가 제품과 함께 어떤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재했다. 지금까지 마케터의 관심은 제품에 포커싱 되어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생태계에서는 제품보다 소비자 자체로 시야가 달라진다. 디지털은 구매와 생활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오는 인기있는 콘텐츠의 어디에도 제품 자체를 홍보하는 소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대부분의 콘텐츠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생활과 삶에 대한 표현과 공유이다. 따라서 디지털 생태계를 대응하려는 마케터들은 소비자의 일상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고객 경험에 대한 설계를 해야 한다.

 

최근에 알게 된 ‘식권대장’이라는 플랫폼이 있다. 식권대장은 직장인 타임라인에 맞춰 먹고 마시는 ‘식(食) 문제’를 해결하는 모바일 플랫폼이다. 한 마디로 모바일 식권이다. 식권대장은 기존의 종이식권이나 장부를 대체하여 식대 운영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이다. 필자의 눈에는 식권대장이 완전한 생활 플랫폼으로 보여져서, 식권대장을 운영하고 있는 벤디스 조정호 대표에게 앞으로 비즈니스의 행보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조 대표가 기획하는 것은 식권 외에 출장서비스, 복지서비스 등 기업이 개인 직원에게 지출하는 모든 비용, 즉 직장인 지갑을 대체하는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시키는 비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은 직장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연구였다. 당연한 작업이다. 이렇듯 디지털 생태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일상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식권대장 (그림 출처: 소비자평가, 스타트업리포트)
식권대장 (그림 출처: 소비자평가, 스타트업리포트)

 

마케팅 뉴노멀로 가는 새로운 접근

디지털을 생태계에서는 마케터가 적용해야 하는 접근과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마케팅 뉴노멀이라고 부른다. 디지털은 기본적으로 연결의 생태계, 소비자가 주인공인 일상의 공간이므로 이러한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면 마케팅의 뉴노멀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디지털에서는 마케터의 시선이 ‘제품’에서 ‘소비자’로 향해야 한다. 즉, 제품이 주인공이 아니라 소비자를 주인공으로 놓고 제품을 배경에 배치하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이는 디지털이란 공간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산만한 소비자들이 서로 매개(mediate)되어 그들의 선택에 의해 생활의 연결고리가 확대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이 이들의 생활 연결고리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문제에 대한 솔루션으로 포커스 되기 보다, 소비자의 멋진 일상에 놓인 존재로서 전달되어야 한다. 제품은 소비자의 니즈 충족에 머물러 있기 보다, 소비자의 경험을 채워주는 서비스로 확대되어야 존재의 의미가 강해진다. 이러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솔루션을 제안하는 입장이기 보다, 소비자가 자신의 일상과 연계되어 기업의 솔루션 제안에 참여하는 방식이 더 적합하다. 따라서 마케팅의 목표는 시장 점유율(Market share)을 확보하는 경쟁적 시각에서 벗어나, 고객의 24시간 내의 시간 점유율(Time share)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케팅 뉴노멀에서는 전략의 방향이 마켓 플래닝(Market planning)을 향하기 보다, 라이프 플래닝(Life planning)을 추구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전통적 마케팅 vs. 뉴노멀 마케팅
전통적 마케팅 vs. 뉴노멀 마케팅

 

디지털 생태계를 위한 새로운 브랜드 법칙이 필요하다

디지털 생태계의 구축. 기존과는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많은 기업들이 라이브 커머스가 뜬다고, 메타버스가 뜬다고 마치 새로운 유통 판로가 열린 듯이 상품 보따리를 싸 들고 새로운 플랫폼에 자판을 벌린다. 하지만 들리는 소식은 “생각보다 안 팔린다” 이다. 이러한 참담한 결과는 디지털 생태계를 소비자가 일상을 사는 세계가 아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일즈'에 집착하는 시각으로 디지털 생태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식의 한계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는데 필요한 ‘브랜딩’인데 말이다.

 

과거에도 판매를 위한 유통 채널이 있었고, 브랜딩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었다. 디지털 생태계에도 판매를 위한 채널과 브랜딩을 위한 채널은 공존한다. 단지, 판매와 브랜딩이 모두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추고 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플랫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플랫폼의 형태는 고객의 트래픽을 잡는 방향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다. 따라서 고객의 일상 속 기회의 순간을 잡아 제품을 매출로 연결시키는 퍼포먼스 마케팅과, 고객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의 일상의 취향으로 선택될 수 있는 브랜드 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하는 인식과 역량을 갖춰야 한다.

 

무수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디지털 생태계는 마치 우주 공간과도 같다. 마치 태양계의 많은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듯, 상대가치가 무색해진 이 곳에서는 브랜드가 많은 플랫폼들과 관계 맺기를 하면서 자신만의 생태계를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확실히 과거의 브랜딩과는 다른 방법이다. 디지털 브랜딩은 우리 브랜드라는 절대 가치를 중심으로 고객의 일상이 콘텐츠화 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브랜드가 더 확산될 수 있고 매출로 연계될 수 있도록 플랫폼 IMC를 기획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더 강한 매력을 가진 브랜드가 더 강한 플랫폼을 만들 듯이, 이제 플랫폼의 파워를 부스팅 하기 위해서 브랜드의 본질을 살려야 할 타이밍이다. 이제 브랜드도 유니버스라는 메가 트렌드에 올라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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