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추진된 지 6년차가 되는 때이다. 그 동안 빅데이터, 인공지능, AR/VR 등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도입하는데 참으로 바빴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변곡점으로 변화의 패러다임은 ‘기술’에서 ‘경험’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더 빠른 디지털로의 전환, 그리고 고객 경험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 시점에서 ‘고객경험’이라는 화두는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키워드였다. 가트너(Gartner)가 매해 발표하는 신기술의 시장 안착 패턴을 이야기하는 하이프사이클(Hype Cycle)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기술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신기술의 성장세가 급상승하다가, 시장에서 적절한 사용성을 검증받지 못하면 거품과 함께 기대치가 떨어지면서 하강기를 맞게 된다. 이때 검증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고객경험이다.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 기술인가? 기존에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뛰어넘는 고객가치를 줄 수 있는 기술인가? 이는 신기술조차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공이 단순히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고객경험의 재정의’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지금까지 고객에게 제공해왔던 제품과 서비스를 디지털을 활용해서 어떻게 새롭게 혁신할 수 있을지, 신기술을 도입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고객경험을 재정의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은 고객경험 혁신의 때이다. 2020년 CES의 테마도 ‘경험의 시대(Age of Experience)'이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 기업이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지로 제품과 서비스를 다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객 경험을 혁신하기 위해서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고객에게 주는 경험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하는 조직의 혁신부터 필요하다. 조직에서 변화를 꾀하기는 여간해서 쉽지 않다. 변화를 준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에 역행하는 흐름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는 조직을 바꾼다는 것은 한 두 사람의 생각을 바꿔주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많은 부서들이 하나의 몸이 되어 관성처럼 움직이고 있는 시스템을 일단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디지털 역량(Digital Capabilities)’과 함께 ‘리더십 역량(Leadership Capabilities)’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디지털 역량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업 경영을 효율화하고 새로운 고객 경험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능력’이다. 솔직히 디지털 역량을 갖추는 일도 만만치 않은 자본과 인력의 투자를 요구한다. 기존 인력들은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 때문에 외부의 디지털 전문가들을 찾아 가이드를 받으며 하나씩 개척해야 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리더십 역량은 어떠할까? 리더십 역량은 ‘기업의 CEO가 명확하면서도 확고한 디지털 비전을 기반으로, 조직의 참여를 유도하고 조직 내에 전반적인 디지털 역량이 구축될 수 있도록 운영 관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리더십 역량을 갖추기 위해 많은 CEO들이 디지털을 공부하느라 다양한 AMP(최고경영자과정) 과정들을 밟으며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며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기 위해 애를 쓴다. 또한 어떻게 이를 조직적으로 구현해낼지에 대해서도 머릿 속 설계안을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디지털 리더십 역량이다. CEO가 갖춰야 할 디지털 리더십 역량에는 ‘디지털 비전 수립 역량’, ‘디지털 거버넌스 구축 역량’, ‘기술 리더십 역량’,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직의 대규모 참여유도 역량’이 있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 리더십 역량 중에 외부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워 반드시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하지만 조직의 리더로서 참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과제가 있다. 바로 ‘조직의 대규모 참여유도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는데 전 직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말한다. 굳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거창한 주제를 꺼집어내지 않더라도 무언가에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직원들은 사장만큼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존에 하던 일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워서 만들어내라는 건 30대나 40대같이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버퍼없이 사는 인생에겐 과도한 요구처럼 들린다. 회사에서 교육의 기회를 주어도 스스로 적극성이 없으면 머리 식히러 나가서 사람들 만나고 스트레스 좀 풀다가 다시 들어와서 바쁘게 돌아가는 현업에 투입되는 정도로 끝나니, 무엇이 달라지길 기대하는 심정만 답답할 뿐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직원들의 동기부여 방법이 필요하다. 일찌감치 우수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리워드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직원들은 ‘보상 따윈 필요없으니..’와 같은 자세로 답을 한다. 동기부여 방법도 잘 먹히지 않는다. ‘직원의 필요’냐 ‘오너의 욕심이냐’의 기로에서 많은 대표들의 고민은 도돌이표처럼 깊어만 간다. 설마 대표들이 본인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러겠나. 다 기업을 위해 고객을 위해 하는 일인데 이를 알아봐주지 못하는 직원들이 야속할 뿐이다. 직원들이 그렇다고 내버려 두기에는 계속 쪼그라드는 시장 성과를 보면서 혼자 속만 타들어간다. 회사에 내 마음 이해해주는 오른팔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무엇이 문제일까?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
이 시점에서 다시 리더가 가져야 할 자질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마케팅협회가 진행하는 디지털마케팅 17기 교육 과정에 원우사 방문 코너가 있다. 마치 학교 교사들이 학생들 가정 방문 다니듯 원우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기업경영의 어려움을 살피는 과정이다. 이번 차수에는 ‘서안산노인전문병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 곳 현장 방문 인터뷰 중에 질문에 대한 귀한 답을 얻었다. 현장 방문은 5월 14일 AMP 교육이 끝나고 이루어졌다. 서안산노인전문병원 임선영 이사장의 안내에 따라 한국마케팅협회 김길환 이사장과 과정 지도교수인 서울예술대 김유나 교수, 그리고 이사장의 절친이자 원우인 제이앤디써키트 하인선 부사장이 안산까지 함께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내부 병동을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입구부터 꼼꼼한 검열을 거치고 들어간 서안산노인전문병원은 탁 트인 전망에 마음까지 평온해지는 원포공원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좌측부터 서울예술대 김유나 교수, 서안산노인전문병원 임선영 이사장, 제이앤디써키트 하인선 부사장, 한국마케팅협회 김길환 이사장
좌측부터 서울예술대 김유나 교수, 서안산노인전문병원 임선영 이사장, 제이앤디써키트 하인선 부사장, 한국마케팅협회 김길환 이사장

 

임 이사장은 이곳을 환자들이 편히 지내다 갈 수 있는 고객경험이 훌륭한 요양병원으로 만들어가고 싶어했다. 이 곳의 병원 생활들을 환자들이 서로 나누고 공감하면서 함께 치유될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요양병원은 죽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곳이다. 임 이사장은 요양병원이 어떤 곳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이 곳은 지금 죽어도 그만인 노인들이 가족의 불편을 피해 오는 곳이 아니라, 이 곳은 그 어르신들이 죽을 때까지 생애의 마지막을 보내는 집이라고 하였다. 집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노생을 보내고 세상과 작별을 하게 되는 마지막 장소. 요양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노인인구가 많아지고 100세 인생이 되면서 요양병원도 치열한 시장경쟁을 피해갈 수 없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서비스의 본질이라는 점을 잊지 않은 말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서비스가 화려해 지고 기술이 고도화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놓치기 쉬운 것은 고객에 대한 기본이고 본질이다. POD(Point of Difference: 브랜드 차별 속성)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POP(Point of Parity: 카테고리 공유 속성: 불충분 편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가 특히 중요한 영역이 있다. 서비스업이 그렇다. 기본부터 불만족하면 아무리 새로운 걸 제공해 준다 한들 무슨 만족이 있겠는가. 임 이사장의 이야기에서 요양병원에서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내고 있을 노인 환자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서비스의 기본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에게서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임 이사장의 비전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도입으로 인해 많은 대표들이 겪는 문제가 이 곳에도 동일하게 있음을 알게 됐다. 고객경험의 혁신, 조직의 혁신, 조직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에 관한 풀리지 않는 도돌이표 같은 문제 말이다. 리더십 문제로 고민하는 임 이사장에게 김길환 이사장이 뼈 때리는 조언을 하였다. “가장 좋은 리더십은 조직원들이 스스로 성장한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라고. ‘성장’, 함께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단어였다. 임 이사장이 겪는 문제는 직원들의 성장 동력을 찾아주면 되는 문제였다.

 

우리는 언제 성장한다고 느낄까? 돈을 많이 받는 것은 일에 대한 ‘성과’이지 ‘성장’과는 본질에서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내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을 때, 내가 어떤 기여를 한다고 느낄 때, 비로소 성장한다고 느낀다. 성장은 일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직무 정체성’이나, 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긍정적인 감정’ 같은 것이다. 회사의 직원들은 고객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하는 일이 고객에게 의미로 다가간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심어주면 돈 이상의 심리적인 리워드, 바로 ‘정체성’과 ‘성취감’이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일을 통해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많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서적들이 고객 경험의 혁신을 위해 업(業)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업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것은 외부 고객 뿐만 아니라 내부 고객인 직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업의 본질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디지털 리더십 중 ‘조직의 대규모 참여유도 역량’을 갖추기 위한 첫 번째 솔루션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은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다시, 김길환 이사장은 업의 본질을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지침으로 ‘철저히 자신의 시선을 버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전면 수정하는 의식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두 번째 조언을 하였다. 모든 것을 철저히 고객의 시선에서 보는 일. 이것은 내 마음의 뿌리를 옮기는 일과 같다. 이것은 내(I)가 아닌 너(you)가 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 갖기 어려운 마음의 시작점이다. 여기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절대 명분이 나온다. 바로 ‘고객’이다. 우리는 시대를 넘어 지지와 사랑을 받는 위인인 링컨을 게티스버그에서 외친 그의 연설로 기억하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겠다는 것. 그가 마음 속에 품은 한 마디는 ‘국민’이었다. 어떤 명분보다 강력한 명분. 국민을 위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그의 의지. 반대세력을 뚫고 본인의 뜻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데는 그만한 단어도 없었다. 마케팅은 어떠한가. 마케팅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 고객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대표의 의지. 마케터에게도 명분은 역시 고객이어야 했다.

 

필자는 임 이사장과 함께 나눈 긴 대화 속에서 그의 마음에는 이미 고객에 대한 애정 어린 you의 시선이 있는 것을 느꼈다. 자식 손자가 끓여주는 누룽지로 뱃속을 달래고 심신을 녹일 수 있는 내 집과도 같은 행복 병원, 기술과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고 더 퀄리티 높은 서비스로 고객을 맞이하기 이전에 남은 여생을 행복으로 마감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생활의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노인전문 헬스케어센터. 같은 안산 시민으로 안산에 이렇게 좋은 철학으로 노인들의 복지에 힘을 쓰고 있는 요양병원과 병원을 이끄는 임선영 이사장이 있다는 사실에 즐거운 원우사 방문을 행복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고객의, 고객에, 고객을 위한’ 곳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귀한 교훈은 덤이었다.

 

*본 기고문은 한국마케팅협회 제17기 디지털마케팅CEO과정 원우사 현장 방문을 통해 작성한 글입니다. 신안산노인전문병원은 혈액투석, 전문재활, 중증요약 전문병원으로, 의사 및 간호사 1등급 의료기관이자, 2회 연속 보건복지부 인증을 획득한 안산 소재 우수 병원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주옥 같은 말씀으로 마케팅 본질을 일깨워 주시는 김길환 이사장님께도 머리 숙여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신안산노인전문병원 홈페이지: http://www.sashospital.com/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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