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평가 김유나 편집장

"시장세분화의 축이 바뀌고 있다”

지금은 ‘시간’을 새로운 자원으로 봐야할 때”

단기-적기-장기적 관점으로 고객의 시간을 관리해라”

 

‘시공간을 다스리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망치를 휘두르는 천둥의 신 ‘토르’나 악당들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물 이야기가 아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한 ‘인셉션’이나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최근 마케팅 필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대체 마케팅 필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영업의 목적은 ‘매출’을 올리는 것이지만, 마케팅의 목적은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름조차 마케-팅(Market-ing)일까. 따라서 마케팅이라는 땅따먹기 전쟁에서 STP 전략(Segmentation-Targeting-Positioning)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선에 있는 것이 바로 세그멘테이션이다.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은 뭉뚱그려진 시장을 전략적으로 쪼개서 우리 브랜드가 진입할 적합한 땅을 찾는 작업이다.

 

여기에서 마케팅의 오묘함이 나온다. 일단 시장을 나누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시장을 규정하는 일이다. 우리 브랜드가 진입할 영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규정해야 우리가 초기 포지셔닝할 위치(Brand positioning), 우리가 공략해야 할 타겟에 대한 관점(Target definition), 우리의 신규 고객을 어디서 데려와야 할지에 대한 경쟁자 설정(Competition setting), 더 나아가 우리가 확장해 나가야 할 영토(Brand extension)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진다. 맥도날드의 경쟁자를 버거킹과 롯데리아로 볼 것인지, 아니면 비슷한 가격대와 편의성을 가진 김밥집, 샌드위치 전문점, 편의점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우리 브랜드의 포지션과 타겟에 대한 규정, 시장에 대한 확장 전략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요즘같이 업의 경계가 파괴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는 더더군다나 시장을 규정하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시장 자체가 물리적으로 눈에 띄지도 않고 구분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검색 포털인가, 쇼핑몰인가? 배달의 민족이 배달업체인가, 이커머스인가? 카카오가 SNS 회사인가, 택시회사인가? 스타벅스가 커피회사인가, 금융회사인가? 무인양품이 생활의류 회사인가, 호텔인가? 시세이도가 화장품 회사인가, 레스토랑인가? 사례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경계 허물기가 점점 더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IOT 기술이 본격화되면 사물 자체가 광고판이 되고 커머스 채널이 되니, 과연 산업군을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재고해봐야 할 문제로까지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시장세분화의 기준도 덩달아 모호해졌다. 시장이 보이질 않으니 시장을 어떤 기준으로 나눠야 할지는 더 소원해진 이야기다. 그렇다면 최근 디지털로 변모되고 있는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 무엇을 결정적인 단서로 삼아야 할까? 그 동안의 마케팅은 시장세분화의 큰 축을 ‘제품’에 두었다. 제품의 특징을 잘 살펴서 이것을 살 만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우리 영역을 설정하였다. 하지만 데이터로 타겟 추적이 가능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제품보다 ‘사람’에 집중한다. 개인의 이동 동선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으니 이런 기조에서 개인화 마케팅은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개인 한 사람의 일상을 세분화하는 초(超)개인화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때 새로운 변수로 주목받는 것이 ‘시간’이다.

 

그럼,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마케터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시간’이란 세분화 변수에 어떤 마케팅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고객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자. 고객의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기까지 하루 일과를 들여다보면 된다. 그 안에 많은 구매 의사결정의 시간이 존재하고 많은 소비의 시간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스마트폰이 항상 우리 손에 들려있기 때문이고, 언제 어디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이 스마트폰을 손에 든 사용자의 터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운 스마트폰 안에서는 영상을 보다가도 제품을 구입하고, 제품을 구입하다가도 친구와 대화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넷플릭스의 경쟁자가 디즈니 플러스가 아니라 수면시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따라서 누가 어떻게 고객의 구매와 소비의 시간을 점유하는지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리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는 시간점유율(Time share)을 획득하는 것이 마케-팅을 잘하는 비법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객의 시간을 점유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기업은 고객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제 경영과 마케팅은 제품을 가지고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 외에 어떻게 고객의 시간을 관리해 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보통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가장 쉬운 방법은 계획표를 작성하는 것이다. 소시적 우리는 시간 관리를 배우기 위해 방학 때마다 일일계획표를 작성하지 않았던가. 이제 마케터들도 고객의 시간계획표에 맞게 전략을 구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춰야 한다. 필자는 여기에 대해 단기 전략, 적기 전략, 장기 전략이라는 틀을 제안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접근이 가능한지 보자.

 

1. 단기 전략 : ‘기다림’을 줄일 수 있도록 ‘사용 주기’를 공략해라

단기 전략은 ‘기다림’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기다림이 왜 문제가 되는가? 기다림은 ‘참고 있다’는 불편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요즘 소비자들(특히 MZ세대)은 기다림의 미학에 취약하다. 특히 디지털 세계에서는 말이다. 사이트 로딩이 늦으면 창을 닫아버리고, 고객센터에 글을 남기고 기다릴 바에 바로 채팅창에 질문을 던진다. 채팅으로 구매 문의를 하다 가도 답이 안 오면 너무 쉽게 다른 상품으로 갈아탄다. 댓글도 실시간 달려야 하고, 활성화되던 댓글창이 어느 순간 멈춰지게 되면 이미 시류에서 벗어난 콘텐츠로 전략되기 일쑤다. 실시간 응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제 마케터는 고객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고객의 기다림을 다른 매력으로 대체해 주던, 기다림의 시간을 최소화하던 고객의 기다림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다리게 할 필요도 없다. 기다릴 새도 없이 직접 찾아가면 된다. 요즘 유통보다 배송이 각광받는 이유이다. 진작부터 새벽배송, 로켓배송, 당일배송 같은 배송전쟁이 한참이지 않던가. 기업이 무리하게 물류 관리비나 배송 인건비를 감당하는 것은 기다리다 지쳐 경쟁 대안으로 이탈할 우려가 있는 고객들을 잡기 위한 절실한 몸부림이다. 배송만의 문제는 아니다. 매일 사용하는 기초 화장품, 아침마다 마시는 건강음료, 하루 3번 쓰는 칫솔, 3~4일 주기로 반복되는 세탁, 매일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같이 습관화된 반복 소비 안에 불편함을 참고 있는 기다림의 상황이 존재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습관화된 불편을 개선할 수 있도록 우리 업태와 제품 사용행태에 맞는 구매 및 소비 주기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2. 적기 전략 : ‘필요’한 타이밍을 찾아 ‘취향’으로 저격해라

적기 전략은 ‘필요’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이는 요즘 각광받고 있는 ‘개인화 마케팅’과도 일맥상통하는 접근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개인화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축이 필요한데, 이는 ‘타겟 정확성’과 ‘메시지 관련성’이다. 타겟 정확성은 개인 단위로 우리 브랜드에 맞는 타겟을 찾아내는 정교함을 말하고, 메시지 관련성은 그렇게 찾은 타겟에게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최적화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개인화 마케팅이 타겟 적중률을 높이는데 신경 써왔다면, 앞으로는 그들에게 관련성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집중하는 것으로 마케팅이 고도화되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것이 구매 전환율과 재방문율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고객 경험을 향상하는데 있어서 마케터들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개인화되고 연관성이 높은 경험’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연관성이 바로 ‘타겟의 필요’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마케팅은 누가 타겟이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것을, 원하는 스타일로 제공’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이런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여정(Consumer journey) 중심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여정에 따라 고객의 하루 일상을 쫓아가다 보면 다양한 생활 속 모멘트들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여기에 기업의 자원들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이 변모하는 것이다. 고객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점유하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초개인화 마케팅의 개념이다.

말이 초개인화 마케팅이지, 고객의 필요의 순간을 점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요의 타이밍을 잡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활용하는 것이 추천 알고리즘으로 많이 쓰이는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이다. 이는 나와 유사한 사람들의 행동에 근거해서 동일 제품을 나에게도 추천하거나, 나의 과거 이력들을 살펴서 유사한 패턴의 제품을 나에게 다시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협업 필터링은 최근 연관 분석을 단계적으로 심화해가면서, 타겟을 저격할 수 있는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진화시키고 있다.

 

3. 장기 전략 : ‘일생’을 펼쳐 ‘라이프스타일’을 선제안 해라

장기 전략은 ‘일생’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최근 장기 전략으로 주로 언급되는 것이 구독 서비스이다. 구독 서비스가 뜨는 이유는 고객의 시간을 줄여준다는데 있다. 하지만 구독 서비스의 진짜 매력은 단순히 구매의사결정의 불편을 대신해 준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고객은 기본적으로 익숙한 것을 편리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니즈와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을 접하고 싶은 니즈를 가지고 있다. 이미 소유를 넘어 경험의 가치가 중요해진 오늘날, 동일한 비용을 내고 더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서비스에 소비자들은 환호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넷플릭스에서 봤던 영화와 유사한 영화들만 보고 싶어하지도, 지그재그에서 입던 스타일의 옷들만 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객의 니즈도 변화하고 고객의 상황도 바뀐다. 따라서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과 라이프 스테이지(life stage)에 맞게 추천의 방향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큐레이션 서비스가 개입된다. 취향이 확실한 고객에게는 취향에 맞는 스타일의 제품을, 보다 폭넓은 경험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다채로운 종류의 제품을 큐레이션 해줘야 한다. 따라서 구매 제안에도 큐레이션이 필요하다. 이처럼 구독 서비스의 진짜 매력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해 준다는데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뜨면서 고객을 락인(lock-in) 시키는 방법이 중요해졌다. 고객은 붙잡아 둔다고 붙잡히는 존재가 아니다. 매력적인 가치 제안이 없는 한 고객은 가차없이 떠난다. 많은 플랫폼 기업들이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떤 기업인들 LTV(Lifetime value)를 최대화해서 이익을 길게 가져가고 싶지 않겠는가.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갈 마케터는 고객의 찰라부터 일생까지 고객의 시간을 관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정녕 브랜드의 단기-중기-장기 전략을 짜기 전에 고객의 단기-적기-장기 전략을 짜줘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마케터에게는 고객의 시간 관리를 위해 더욱 깊숙이 소비자의 생활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 역량이 요구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新) 고객 경험 창출의 실체이다. ‘시공간을 관리하는 자,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말이 이제 이해가 가는가. 고객의 시간을 장악하는 자, 마케팅계의 히어로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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