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가 곧 투자 위기다.” 

전 세계 기업 CEO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탄소 중립 계획을 구체적으로 요구한 블랙록(BlackRock) CEO 래리 핑크(Larry Fink) / 출처=블랙록 홈페이지

지난 2020년 1월,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CEO 래리 핑크(Larry Fink)는 고객 및 세계 유수 기업 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을 통해 기후 변화가 투자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다면서, “앞으로는 기후변화를 고려하여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는 석탄 생산 등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사업에서 투자를 철수하고 화석 연료 관련 사업을 제외한 새로운 투자 상품을 제안하는 것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하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핵심 요소들) 지표에 집중하는 새로운 포트폴리오 구성도 포함되었다.

이와 동시에 블랙록은 미국 투자사 중 최초로 기후 변화 액션 투자자 그룹인 클라이밋 액션 100+(Climate Action 100+) 가입도 발표했다. 클라이밋 액션 100+는 코카콜라, 보잉과 같은 세계 유수 기업들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투자사들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기업 경영을 촉진하기 위해 결성한 네트워크로,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 투자사들은 가입하지 않아왔다.

그리고 지난 7월, 자체적으로 발표한 지속가능성 리포트를 통해 블랙록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에 속한 회사 중 총 244개 기업이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그 중 53개 회사의 이사회에서 주요 결정에 반대표를 던지는 액션을 취했다고 밝혔다. 영향을 받은 53개 회사 중 에너지 관련 기업은 총 37개로 로열더치쉘(Royal Dutch Shell), 셰브런(Chevron), 엑슨모빌(Exxon Mobil), 토탈과 같은 대표적인 석유 회사가 포함되었다. 블랙록은 리포트를 통해 나머지 191개 회사에 대해서도 1년 내에 중요한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이사 선임 반대 등의 권한 행사를 예고했다.

7조 달러(약 7,829조 원)가 넘는 자산을 운용 중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가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포트폴리오 변화 및 행동을 요구하자, 작년 한 해 동안 산업 전반에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세계 최대 식량 기업 카길(Cargill)과 세일링 회사 BAR Technologies이 협업하여 개발중인 ‘돛을 단 화물선’ / 출처=카길 홈페이지

버드와이저, 호가든 등 500여개의 주류 브랜드를 보유한 벨기에의 AB인베브(AB InBev)는 자원 회사 리오 틴토(Rio Tinto)와 협업하여 친환경 캔 개발을 시작하고 2025년까지 탄소 배출을 25% 줄이는 단기 목표를 발표했다. 세계 최대 식량 기업 중 하나인 카길(Cargill)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3%를 차지하는 해상 운송의 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화물선에 장착하는 거대한 돛을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해당 기술이 적용되면 카길의 화석 연료 사용을 현재 사용량의 30%까지 줄일 수 있게 되면서, 세계 해운업계가 제시한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 탄소 배출량 달성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블랙록의 직접적인 타깃이 된 세계 주요 석유 회사들 또한 사업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유의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고 있다. ‘세계 5대 에너지 기업’이라고 불리우는 기업들 중 로얄더치쉘, 토탈, BP, 엑슨모빌은 모두 2050년까지 탄소 중립(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을 선언했고 유일하게 셰브론 만이 탄소 중립 관련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애플, 아마존과 같은 대형 IT기업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의 자본 시장과 산업 흐름을 주도하던 미국과 유럽의 석유 회사들은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그 입지를 잃어왔다. ‘빅 오일’ 회사들의 소극적인 행보는 금전적인 손실은 물론이고 브랜드 이미지 훼손, 기업 가치의 하락을 유발했다. 특히 엑슨모빌의 기업가치는 2020년 들어 50% 이상 하락하면서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에서 퇴출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여기에 세계 최대 투자사인 블랙록의 경고가 더해지자, 2020년 들어 세계 주요 석유 회사들은 잇따라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거대한 흐름의 전환을 예고했다.

 

탄소 중립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프랑스의 토탈(Total)과 '인간'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내세운 미국의 셰브론(Chevron) 트위터 계정 비교 / 출처= 토탈, 셰브론 트위터 계정

주요 석유 회사들의 에너지 전환 의지와 부정적인 이미지 탈피를 위한 노력은 이들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 아닌 자원을 다루는 기업의 입장에서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로얄더치쉘, 엑슨모빌, BP와 같이 탄소 중립을 선언한 기업들의 소셜 미디어 계정은 ‘탄소 중립(Net Zero)’, ‘더 깨끗한 에너지 솔루션’, ‘책임감 있는 에너지 기업’과 같이 적극적으로 이들이 추구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탄소 배출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셰브론의 경우, 구성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내세우면서 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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