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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10분 머물러도 '독촉'… 배달기사 '안전배달료' 필요"

국내 최초 배달기사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노무법인 삶'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2020.5.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라이더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음식을 주문한 사람은 왜 배달이 늦느냐고 식당에 전화해서 항의했을 것이다. 길바닥에 흩어진 나무젓가락의 포장지에 찍힌 옥호를 보니까, 그 식당은 내가 가끔 가는 가게였다.

내가 며칠 후에 점심 먹으러 가서 그 라이더는 그후 어떻게 조치되었는지를 물었더니 식당 주인은 "그 사람은 우리 직고용이 아니고 대행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라고 말했다.

나는 점심으로 짬뽕을 먹었다. 짬뽕 국물이 목구멍을 쥐어뜯었다. 

-김훈 산문집 <연필로 쓰기> 중

국내 '배달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달을 '산업'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한 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연간 10조원 규모의 어엿한 산업으로 자라났다.

배달 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와 같은 음식 배달 플랫폼의 등장이 있었다. 옛날에는 배달기사들이 음식점에 속했지만 이제는 배달기사를 찾으러 음식점에 간다면 허탕만 치고 돌아올 게 뻔하다.

주문을 받는 주문 플랫폼, 배달을 대행해주는 배달 대행 플랫폼, 이들과 플랫폼을 연결해주는 대행사까지, 너무나 많은 사업자들이 '음식점'과 '라이더' 사이에 놓이면서 라이더가 어디에 속하는지 모호해졌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배달을 비롯한 '비접촉 온라인 서비스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산업이기에 관련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박정훈(34)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역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묵묵히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배달기사 중 한 명이다.

박 위원장은 유난히도 더웠던 2018년 여름, 배달기사들에게 폭염수당 100원을 달라는 1인 시위를 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배달기사들의 노조 라이더유니온도 결성했다. 그는 주말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을 한다고 했다.

라이더유니온은 한 노무법인 사무실 한쪽을 사용하고 있었다. 박 위원장이 '인터뷰할 만한 덴 여기 밖에 없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이며 안내한 회의실 안에는 책장 가득 노동법 서적이 꽂혀 있었다.

―코로나19로 배달 산업이 더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확실히 라이더 수는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실직한 사람들이 플랫폼 시장으로 몰릴 것이라는 예상들이 있다. 배민 커넥터(아르바이트 개념 라이더)는 코로나 이전에는 2만 명 정도였는데 이제 5만 명으로 늘었다. 당연히 전업 라이더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배달 건수는 줄어든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라이더들이 크게 기여했다.
▶배달받는 사람이 자가격리자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평소에도 이동이 힘든 사람들이 배달을 많이 시킨다. 다리에 깁스했다던가, 육아 때문에 시간이 안 나는 사람들…. 이런 분들을 위해 배달할 때는 보람 있다. 아기들은 우리를 '햄버거 아저씨'라고 부른다.

―지난해 일부 요기요 라이더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요기요뿐만 아니라 대부분 라이더는 분명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다. GPS로 라이더의 위치정보가 사용자에게 전달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가 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가 되나.
▶라이더의 위치를 표시하는 '점'이 한 지점에 10분 이상 있으면 '놀지 말라'며 전화가 온다. 배달이 몰리는 시간에는 빨리 배달을 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의 딜레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자유롭게 노동하면 서비스 상품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는 '빠르게 배달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라이더 유니온의 목표는 모두의 '근로자성' 인정인가.
▶근로자성으로만 주장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최저임금제도는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전통적인 노동의 개념 아래에서 노동자의 최저 소득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라이더와 같은 '건당'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대안'이 필요하다. 화물 쪽에서는 최저 수수료를 보장하는 '안전 운임제'가 있다. 우리도 '안전 배달료'를 협상하는 게 목표다.

―플랫폼 노동은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제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다.
▶해외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흐름이 있다. 미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근로자 아님을 주장하려면 사용자가 이를 입증해줘야 한다. 사실 노동권이 잘 보장된 나라는 플랫폼이 진입하기 힘들다. 딜리버리히어로만 해도 본국인 독일에서 철수했고 호주에서도 근로자들이 소송을 걸자 철수했다.

―플랫폼의 등장으로 라이더들의 여건이 더 나빠진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기존에 배달하는 분들은 식당에 '직접 고용'된 경우도 많았지만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이 배달업계를 장악하기 쉬웠던 거다. 원래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플랫폼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지자체 등에서 공공 배달 플랫폼을 내놓고 있다. 라이더들에게 도움이 되나.
▶지자체가 최소한 라이더들에게 산재보험을 가입시키는 조건으로 배달대행업체들과 계약을 맺는 모델을 만들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본다. 또 플랫폼 간의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라이더에 대한 '혐오'도 깔려있다. 대표적인 게 라이더들이 배달 음식을 빼먹는다는 이야기들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로는 바빠서 빼먹을 틈이 없다. 빼먹는다는 건 한가한 라이더일 텐데 아마 가게와의 트러블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행위이며 옹호할 생각은 없다.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라이더 세계에서 매장될 것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어떻게 결성하게 됐나.
▶우연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우연은 아니다. 배달 노동이 궁금해서 2017년 패스트푸드점에 라이더로 취직했다. 그러다 2018년 폭염수당을 달라며 했던 1인 시위가 화제를 모으며 결성하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운동권이 위장 취업했네'라며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노조나 노동법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신나게 말하던 박 위원장은 개인에 대한 질문들을 이어나가자 어색해했다.

―정부나 의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노조를 정책을 만드는 주체로 봐줬으면 좋겠다. 자기네들이 원하는 법안을 만드는데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며 장식용으로만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노조가 노동문제의 가장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웅이 필요한 게 아니다. '피해자'가 아닌 '파트너'로 봐달라.

인터뷰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진행됐다. 주변에 어버이날 특집 기사에 쓸만한 '효자' 없냐고 물었더니 "저를 비롯해 제 주변은 다 '불효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위원장은 월 5만원을 받고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돈이 없다는 점.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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