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이미경 부회장, 통역가 샤론 최, 번역가 달시 파켓, 음악 감독 정재일 등 역사를 쓴 주역들

제 92회 아카데미에서 수상한 봉준호 / 로이터 연합 뉴스

지난 2월 9일, ‘기생충’ 팀은 오스카 4관왕을 차지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신화를 새로 썼다. ‘기생충’은 “백인의 축제”라고 불리던 “오스카 시상식”의 기준을 완전히 깨뜨렸다. 앞선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는 “자막의 장벽을 1cm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재치있게 비꼬는 소감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서 봉준호는, 자막 1cm의 벽을 완벽히 부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생충’팀의 영광은 물론 감독인 봉준호와 ‘봉준호 군단’인 이선균, 조여정, 이정은, 최우식, 박소담 등 많은 배우들의 노력 덕분이지만, 함께 영화의 성공을 위해 물심양면 노력한 ‘숨은 주역들’이 있다.

CJ 이미경 부회장 / TV조선

먼저 함께 무대에 올라 소감을 발표한 CJ 이미경 대표는 ‘기생충’의 투자 및 배급을 담당했다. 기생충의 진가를 알아보고, 오스카에 작품을 알리기 위해 “오스카 캠페인”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오스카의 문을 두드렸다.

무대에서 봉준호의 소감과 그의 유머를 재치 있게 전달한 샤론 최도 빠질 수 없다. 샤론최는 영화 감독 지망생으로, “용돈 벌이”로 번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작 “용돈 벌이”라는 수식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뛰어난 센스와 암기력, 전달력을 보여주며 봉준호의 제2의 언어 페르소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번역가 달시 파켓 / KBS1 오늘밤 김제동

앞서 말한 자막 1cm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운 번역가 ‘달시 파켓’역시 오스카 신화의 주역이다. 달시 파켓은 미국 출신 영화 평론가이다. 그는 ‘곡성’, ‘택시운전사’, ‘아가씨’ 등 다수의 국내 영화 자막 작업에 참여했고, 한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기생충’의 번역까지 훌륭히 소화하며 주목을 받았다. 서로 다른 문화 때문에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 “짜파구리”등의 한국식 표현을 번역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를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학교를 옥스퍼드로,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외국인들이 완벽하게 이해할만한 표현으로 바꿔, 외국인들의 박장대소를 자아냈다. 그는 “훌륭한 영화로 번역의 중요성이 조명돼 뿌듯하다”며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암울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좌우한 배경음악은 음악 감독 “정재일”이 총괄했다. “봉테일”의 영화 속 디테일은 음악 감독 정재일이 마무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중력을 끌어 모으기 위해 현악기를 활용한 센스는 ‘기생충’의 장면과 치밀하게 엮이며 절묘한 하모니를 이끌어냈다.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 예비후보에도 올랐던 ‘기생충’의 수록곡 ‘소주 한 잔 (A Glass of Soju)' 역시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했다. 이처럼 정재일은 영화 속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대변하는 음악으로 영화의 퀄리티를 한껏 끌어올렸다.

비(非) 영어권 영화 부문 아카데미 최초 시상 뿐 아니라 4관왕을 휩쓸며 영화계에 새로운 획을 그은 ‘기생충’의 수상은 이 숨은 주역들 덕분에 더욱 뜻 깊다. 무대에 나서 함께 수상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들이 기생충을 영글게 만들고 2020 영화계를 강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신화를 쓴 ‘기생충’의 숨은 주역 덕분에 영광을 맞이한 한국 영화계에 또 다른 묵묵한 노력으로 대작과 신화가 탄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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